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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나의 두 번째 피아노 지름신을 맞았습니다.

깍뚜기 조회수 : 2,904
작성일 : 2013-07-12 17:18:24

80년대 중반이 되면서 우리나라 피아노 교육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던 걸로 기억해요. 
당시에도 여전히 피아노는 필수품이 아닌 고가품이었지만, 동네 피아노 학원, 교습소에는 많이 다니기 시작했죠. 
영어니 수학이니 학업 관련한 사교육은 별로 안 하던 분위기라 아, 공문수학은 했네요. 기억하시나요? ㅋㅋ
그저 고무줄 + 피아노, 피아노 + 고무줄, 피아노 + 주산학원이 
방과 후 일정이었습니다. 
(근데 대체 주산학원은 왜 다닌 건지? 한 알이요, 두 알이요~ 암산법 배우고 주산 몇 급 
이런 거 땄거든요. 친한 친구가 가니까 같이 놀려고 다녔는데 5학년 때부터 다닌 컴퓨터가 훨씬 유익했음;;;;)

평범하고 검박한 살림살이였지만 
공문수학은 죽어라 밀리면서 피아노 학원은 거르지 않던 딸이 기특해 보였는지 (사실 학원엔 좋아하던 남학생이 있었습...)
부모님이 큰 맘 먹고 피아노를 사주셨습니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밤색, 장식없이 사선으로 매끈하게 떨어지는 전면부, 묵직한 뚜껑을 여니 가운에 빛나는 글자. 

SAMICK 

학원에서 보던 글자다!!! 와!!!

골목길 초입에 있는 단층 주택 작은 마루에서 똥땅똥땅 열심히 쳤던 걸로 기억해요. 
부모님은 뭘 해주시면서 '이거 얼마다!' 생색내는 스타일이 아니셨음에도, 
어떻게 된 건지 이 피아노는 지금도 가격이 기억나네요 ㅋㅋ 

초등학교, 중학교 초반까지는 학원 다니면서 틈틈이 쳤는데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 
악기는 가구가 되어 갑니다 ㅠㅠㅠ 고등학교 때 음악 실기 시험으로 피아노는 선택했는데, 
야자하고 집에 늦게 들어오니 헤드폰 쓰고 전자 키보드로 연습했던 기억이 ㅜㅜ

두 번 이사를 다니면서도 열심히 끌고 다녔어요. 대학 때 드물게 집에 일찍 들어온 날에는 
뜬금없이 친구 삐삐에 대고 뭔가를 쳤던 기억이... 친구는 무척 당황했을 듯. 잘 못치면서 말이죠.
그렇게 피아노는 언제라도 내가 칠 수 있기 때문에 안달할 필요도 그리워할 필요도 없는 
가구... 아니 악기였죠. 

그러다가 이 녀석과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이 어려운 일을 겪고 몇 번 이사를 다니면서도 다른 물건은 처분했어도 엄마가 피아노만은 가지고 다니셨는데
결국 팔아버리게 된 거죠. 당시엔 전 그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였지만, 오히려 엄마는 딸들의 유년 시절을 
처분하는 것처럼 여겨 더 속상해하셨던 것 같아요. 지금도 '80년대 중반에 만든 국산 피아노가 목재가 좋다던데
아깝다' 고 종종 말씀하십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 다고 언제라도 내가 치고 싶을 때 칠 수 있던 (그렇지만 잘 안 치던 ㅋ)
피아노가 없으니까 갑자기 더 치고 싶어지는 겁니다. 가끔씩 기타를 뜯으며 기분을 달래다가 
서른이 훌쩍 넘어서 다시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지요. 
팔아버린 그 피아노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누가 어떤 곡을 어떻게 치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비루한 실력이지만 남몰래 음악 혼(-_-;;)을 불태우다가 
드디어, 파이널리, 
두 번째 피아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틈나는 대로 신품 매장, 중고 매장, 엄한 동네, 낙원 상가 돌아다녔어요. 
쓸데없이 사지도 못할 별별 브랜드 탐색, 스타인웨이, 파지올리, 뵈젠도르퍼와 페친되기는 옵션;;;
곡절 끝에 참한 녀석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래, 안 입고 안 먹은 걸로 (라고 쓰고 보니 안 입긴 했는데 
안 먹었다기엔 ㅎㅎㅎ) 나의 로망을 실현하는 거야! '로망'이란 단어는 '꿈, 바람, 공상, 환상'이란 걸로 
절대 대체될 수 없는 로망만의 로망이 있지 않습니까~~ 

레슨샘은 피아노가 없어 연습하기 어려우니까 실력이 잘 안 느는 것이라고 격려해주셨는데
이젠 물러설 곳이 없네요, 어쩔거나 ㅋㅋㅋ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폭우가 그쳐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어요. 

문제는 방음이겠죠 ㅠ 늦게 들어오니 평일에 거의 못 치겠고 주말에 조금 칠 텐데...
차음시트 + 방음매트 + 진동 잡아주는 키퍼 + 피아노 뒤와 안에 넣는 방음 블럭 + 방음커튼 
일단 이 정도로 셀프 시공을 해보려고 합니다. 방산시장에서 방음매트를 직접 사러 갔는데, 
1m * 1m 두 장이라 가뿐히 대중교통으로 오려고 했거든요? 사장님이 황당하게 코웃음을 치시더라구요.
두 손으로 들어보고 급좌절 ㅠ 택시타고 오면서 왜 택배로 주문하지 않았는가 후회막급~~
아트 보드인가를 알아보다가 전셋집에 설치하기 어려워서 보류했고요. 

두 번째 피아노가 오기도 전에 미래의 세 번째 피아노를 정했습니다. 
그랜드!!!  그랜드!!!
그랜드를 놓을 전원 주택으로 가야 가능한 일이겠죠 ㅠㅠ
그래도 보이즈...비.... 아지매 비 엠비셔스! 

IP : 180.224.xxx.119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3.7.12 5:31 PM (165.246.xxx.30)

    윗님.. 그냥 두세요.
    따님 대학 간 후 취미로 칠 수도 있잖아요..
    이미 다 잊어버려 칠 수도 없다니요..
    체르니 40 치다가 그만 뒀으면 어느 정도의 피아노 곡은 금방 쉽게 친답니다.

  • 2. 깍뚜기
    '13.7.12 5:33 PM (180.224.xxx.119)

    333님, 아이의 생각은 어떤가요? 40까지 쳤으면 나중에라도 다시 시작하면 금방 배우거든요.
    어차피 공동주택에서는 거실에 피아노를 두면 안 되고, 지금 방에 있으니 눈에 잘 안 보이잖아요.
    생활하기 불편할 정도로 답답하지 않으시면 그냥 두시면 좋을 것 같은데... ^^;

  • 3. 저랑 사연이 넘 비슷하네요^^
    '13.7.12 5:38 PM (112.170.xxx.154)

    저는 아직 두번째 피아노를 사지 못했어요.
    계속 고민중에 있어요.
    제가 한번치면 1시간 이상씩 치는 스타일이라서 디지털을살까 어쿠스틱을 살까 아직도 고민중이예요^^;;
    어쿠스틱이 손맛과 소리와 자기만족은 최고이나 이웃주민께 민폐라ㅠ
    그렇다고 방에 방음공사를 할 수도 없고..
    선택하신 피아노 즐겁게 연주하셔요^^부럽습니다~

  • 4. 깍뚜기
    '13.7.12 5:40 PM (180.224.xxx.119)

    112님,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가봐요, 반가워요 ㅠ
    저도 피아노 사기까지, 그리고 막상 지르자 마자 젤 걱정되는 게 방음이었어요.
    많이 치시는 거면 눈물을 머금고 어쿠스틱이 나을 것 같은데...
    제가 평이 아주 좋다는 방음블럭을 시도해 보려구요. 안 되면 이사 나올 때 벽지 다시 바르더라도
    아트보드를 붙이려고까지 고민 중입니다 ㅠㅠ

  • 5. 저도 지름
    '13.7.12 5:43 PM (115.136.xxx.244)

    저도 서른넘어 피아노 다시 배우고 있는데요... 안 먹고 안 입은 걸로 크게 질렀습니다. 야마하 사일런트 작은거 샀어요 일반 영창 피아노에 사일런트 장치를 달아서 사용하기도 해봤는데 어쿠스틱 피아노 자체의 소리가 안 좋아지는 것 같더라구요... 밤에도 이어폰 꽃고 마음껏 연주할 수 있어서 넘흐 좋아요 !

  • 6. 깍뚜기
    '13.7.12 5:47 PM (180.224.xxx.119)

    우앗~ 저도 지름님 축하드려요!
    매장에서 쓰담쓰담해보던 그 야마하 사일런트~~~

  • 7. 숨은 팬
    '13.7.12 5:51 PM (84.74.xxx.183)

    깍뚜기 님의 글엔 맛이 느껴져요. 글맛.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네요. 생활속에 깊고 단단히 뿌리를 내렸지만 그래도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정갈한 글...

  • 8. 깍뚜기
    '13.7.12 6:23 PM (180.224.xxx.119)

    헉 84님... 예쁘고 아기자기하단 말 처음 들어봐서 너무 부끄러운데요 ㅠㅠ 얼굴 빨개짐;;; ^^;;;

  • 9. 독일이모
    '13.7.12 7:05 PM (91.64.xxx.3)

    저도 7년전 업라이트 피아노를 장만해서 열심히 치고 있습니다. 저는 독일에서 사는데요. 레슨을 받으며 한곡 한곡 레파토리를 늘리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피아노는 좋은 취미지만 이웃에게 끼치는 민폐때문에 마음 부담이 큰 취미죠. ㅠㅠ 방음 잘하셔서 즐거운 연습으로 별세계에 입문하시길 바랍니다. 피아노를 치면서 도를 닦는 기분이 들때가 많아요. 릴렉스, 자기객관화, 잘듣기, 마음 비우기 등등 인생에 응용할 다른 많은 귀한 깨달음을 주는 악기입니다.

  • 10. 블레이크
    '13.7.12 7:52 PM (124.54.xxx.27)

    뭘로 사셨어요?
    저도 80년도 삼익을 거쳐 영창 콘솔형에서 영창 업라이트로
    변경했는데 몇년째 야마하 새까만 업라이트로
    바꾸고 싶어 볼때마다 칠때마다 드릉드릉 합니다ㅠ
    삼십년 넘은 삼익은 아직도 친정집에
    엄마가 치십니다 레슨 받으시며.
    저도 뚜껑 열어본지 언제인지ㅠㅠ
    야마하로 바꾸면 하루 두시간씩 칠 자신 있는데...ㅋ

  • 11. 깍뚜기
    '13.7.13 5:51 PM (175.252.xxx.57)

    독일이모님~ 드뎌 오늘 받았어요! 전 릴렉스나 왜 그리 어려울까요? 악기 연주하며 정신수양...
    공감합니다, 릴렉스와 레가토 이게 안 돼서 내 삶이 이렇구나 반성해봅니다 ㅠ
    독일이모님이시니 근사한 독일 피아노 치시겠지요? 부럽~~~

    블레이크님 / 삼익에서 만든 자일러 국내생산 제품이요 (자일러 ed 126) 한 번 마음간 피아노 있음 계속 생각나실 듯~^^ 혼자만 지를 수 없다! 지르세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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