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Banner

[사설] 말의 죽음, 시인의 죽음 / 한겨레

저녁숲 조회수 : 1,371
작성일 : 2013-01-10 11:17:44

[사설] 말의 죽음, 시인의 죽음

2013.01.09 19:06

 

 

시인의 말은 핍박받는 이들의 무기다. 가난한 이들의 위로이며 소외당한 이들의 벗이다. 말로 말미암아 이들은 다시 일어서고, 저항하고, 앞으로 전진한다. 그의 말마따나 시와 문학은 고통의 산물이고, 시인이 시대의 아픔에 누구보다 예민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런 시인의 맨 앞줄에 새겨진 이름 가운데 하나가 김지하다. 그의 글은 황토에 선연한 땀과 피의 긴장 속에서 튀어나와 독재자와 부역자의 가슴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었다. 치명성으로 말미암아 그는 사형 선고를 당해야 했다. 당대인들은 그 앞에서 숨죽여 몸서리쳤다.

 

그런 그의 말은 어느 날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 불의에 맞서는 이들에게 수치심이 되었다. 시대의 절망이 강요한 산화를 두고 죽음의 굿판으로 몰아붙였다. 요즘엔 그 자신을 옭아맸던 빨갱이 공산당 따위의 말을 마구잡이로 날린다. 황토를 떠나 허공을 맴돌던 그의 말이 언제부턴가 권력의 추력을 받아 가난한 이들의 가슴을 향하게 된 것이다. 물론 치명성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고통을 외면하고 슬픔을 잊은 말이 힘을 가질 순 없기 때문이다. 권력의 요설은 한갓 현혹이고, 협박, 깡통, 쥐새끼, 똥꾸멍, 찢어죽여… 따위의 말은 ‘오적’과 ‘비어’의 말 그대로지만, 맥없이 코앞 시궁창에 박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그가 신앙하는 후천개벽과 여성시대의 도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내공에 대한 믿음 따위를 무작정 비난할 순 없다. 신념은 신념대로 존중해야 한다. 여성성에 대한 판단을 놓고 논란은 있겠지만, 시비를 일도양단할 순 없다. 변신을 안타까워할 순 있지만 훼절이라 매도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의 졸렬한 증오와 마구잡이 가해는 참기 힘들다. 누군가는 그에게 서푼짜리 분노를 집어치우라고 했다지만, 요즘 그가 토해내는 공연한 분노는 서푼 값어치조차 없다. 상생을 말하면서 저 혼자 옳다 우기고, 섬김을 말하면서 섬기지 않는다고 분노하고, 한때 서운했던 감정 때문에 평생을 저주하는 그의 말들이 어찌 한푼 값어치나 있을까.

 

그 자신도 말했듯이, ‘오적’ 이후 말이 육신이 되고 힘과 희망이 되는 그런 시를 그는 쓰지 않았다. 그러니 ‘시인 김지하’는 아주 오래된 전설 속의 이름이다. 하지만 몇몇 시편과 그로 말미암은 수난은 한 시대의 가시면류관으로 우리 기억에 각인돼 있다. 설사 오늘날 그의 말들이 수치스럽다 해도, 그 이름을 쉽게 지울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래도 이제 그를 책갈피에 묻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오늘의 아픔을 담아낼 오늘의 말과 시인을 찾아 나서야 할 것 같다.

 

 

 

 

 

 

IP : 118.223.xxx.230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ㅁㅁ
    '13.1.10 12:08 PM (211.246.xxx.209)

    창비 영인본 살 때 외판사원이 슬쩍 끼워준 시집 김지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폴 엘뤼아르를 읽을 때 자꾸 겹쳤던 이름 김지하. 한겨레가 많이 참으며 글썼구나 싶은 기분, 몇 번이고 자기 원고를 읽고 또 읽으며 썼구나 싶은 기분. 옛 김지하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의.

  • 2. 바이
    '13.1.10 4:03 PM (1.236.xxx.103)

    내 마음은 너를 잊은 지 오래.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785331 엄마. 우리 엄마 친정엄마 23:47:39 55
1785330 12년된 식기세척기 방금 멈췄어요 ㆍㆍ 23:46:45 35
1785329 계란 비싸고 저렴한 가격차이요 진실한 23:46:07 37
1785328 허무한게 귀염둥아 23:45:07 67
1785327 폐백 은주전자 이야기 3 허무 23:40:36 201
1785326 왜 시댁가려면 여전히 힘들까요 1 아류 23:38:43 251
1785325 사교육 카르텔도 윤석렬이 맞았네요. 4 ,,, 23:32:59 616
1785324 올해 왜케 빨리 갔죠 .. 23:32:57 128
1785323 임플란트 할 때요 교정도 같이 하나요 혹시 23:32:15 75
1785322 Ldm 뷰티디바이스 anisto.. 23:29:07 65
1785321 각방 쓰니 서로 터치가 없어서 좋은데 때론 외롭다는...생각 3 각방 23:28:50 606
1785320 곱창김은 이름이 왜 3 ㅡㅡ 23:23:25 621
1785319 스벅에서 별칭으로 부르는 것 4 ㅎㅎ 23:17:49 746
1785318 3차 병원에서 3차병원 전원시 진료의뢰서 4 dday 23:16:11 288
1785317 외모는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12 23:13:25 1,057
1785316 조국혁신당, 이해민, AI의 현재와 미래 2 ../.. 23:12:36 161
1785315 깜빠뉴에 설탕 안들어가요? 1 A 23:09:32 324
1785314 82는 민주당 지지자들만 있었는데 각성하셨네요 36 82 23:03:43 911
1785313 인ㅅ타 알고리즘에 온통 1 ㅡㅡ 23:02:55 711
1785312 지난번 학원 옮긴단 얘기 썼던 사람이에요. 3 학원 23:01:38 528
1785311 차용증이 있어도 갚을돈이 없다는 인간 3 차용증 22:56:32 530
1785310 사랑니 4개 빼야 5 ... 22:53:14 687
1785309 [단독] "IC아닌 JC로 하니 여사가 화났다".. 1 야옹이 22:50:58 1,343
1785308 저는 여의도-마포-광화문 라인을 정말 좋아해요 9 ㅇㅇ 22:49:08 929
1785307 수술하게 되면 부모님께 얘기하시나요? 18 .. 22:45:21 1,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