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학번입니다.
1987년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6월 항쟁 직후 였음에도 불구하고 - 물론 구로구청 사건이랄지, 부정 투표와 개표에 관한 논란도 있었지만 -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날 새벽의 참담했던 울음이 기억납니다.
대학들어가서 처음 제대로 접했던 광주항쟁의 진실과 87년 대선의 경험이 현재 제 정치적 입장, 관점, 가치관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강원도가 고향이고 경상북도 울진이 본적입니다.
87년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때 전라도 땅을 처음 밟아보았습니다.
아버지가 계시던 부산에서 고속도로를 달려 광주에 내려서 시외버스를 타고 과 친구들이 가 있던 정읍에 갔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달라졌지만 그 때 광주라는 도시, 게다가 정읍
정말 큰 길만 벗어나면 모두 비포장도로이던 전라도를 보며 놀랐습니다.
몇 년 전 여름 휴가 때 아이들을 데리고 광주국립묘지에 갔습니다.
비석만 보아도 울음이 나오던 윤상원 열사, 박관현 열사 그리고 그 숱한 이들의 죽음...
선거 때마다 매번 반복되는 전라도 몰표에 대한 비난은 제가 돌을 맞는 것처럼 아픕니다.
이번 개표방송 끝까지 보지도 못했지만
온통 뻘건 가운데 홀로 노랗게 분투하고 있는 호남 땅을 보며
애처롭고 서러웠습니다.
내가 이럴진대 저분들은 어떨까....
경상도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없지 않습니다.
노인들에 대한 연민도 버리겠다는 글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정몽준을 보면서 차라리 너였으면 이렇게까지 기분이 더럽지는 않겠다는 혼잣말도 해 보았습니다.
저 함량미달의 그녀, 5년을 견뎌야 하나 그걸로 끝일까,
애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등등
지금은 그저 참담할 뿐입니다.
오늘까지는 그냥 이렇게 보낼 생각입니다.
그저 호남에, 광주에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언제쯤 광주의 영령들이 더 이상 모욕당하지 않고
김대중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이 김근태 민주주의자가
평안히 잠들수 있을지, 그게 아직도 제 몫이라 생각합니다.
낼 모레면 오십이 됩니다.
제 정신으로 살아야 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