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님의 꿈 이야기에요.
그분의 임기가 끝나고, 엠비가 당선되던 시기. 그분이 밝은 얼굴로 고향에 떠나고, 엠비는 미국에 날아가
딸랑딸랑 카트 끌던 시기. 그 복잡하던 시기에 꾼 꿈이에요.
꿈속에서, 장소는 거대한 공연장이었어요. 원형 무대는 텅 비어있었고, 모든 행사가 다 끝났는지 음악도
이벤트도 없이 그저 조용하고 사방이 어두컴컴했어요.
관객석에 사람들이 아주 많았죠. 다들 자신들끼리 모여 이마를 맞대고 소리를 낮추어 쑥덕이고 있었어요.
저 앞엔 노대통령님께서 앉아계셨어요. 저는 사람들의 무리에서도 떨어지고 대통령님과도 떨어진, 중간의
애매한 위치에 혼자 있었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말의 내용이, 대통령님과 관련된 일이란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이야기가
제가 듣기 싫은,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내용이라는 것도.
저는 혼자 서서 대통령님을 바라보았고, 대통령님도 앞에 앉아 이쪽으로 등을 향한 채, 고개만 뒤로 조금
돌려, 저를 지그시 바라보고 계셨죠.
그때 그분의 표정이 어떠했는지, 저는 평생 못 잊을 거에요. 죽어서 무덤으로 들어가도 못 잊을 겁니다.
다 내려놓은 듯,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듯, 용서하는 듯, 그런 표정이었어요. 입을 다물고 쓸쓸하게 짓는
그 미소가 얼마나 고요하고 외로웠는지, 저는 지금도 생생하게 그 미소를 기억해요.
사람들은 그분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쁜 말을 하면서, 그러면서도 정작 바로 앞에 앉아계신 그분의 표정을
바라보지 않고 있었어요. 그분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어떤 눈을 하고 있는지, 그 모습을 본다면 그런
말따위는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저 외에는 아무도 그분을 보지 않았어요. 그래서 꿈속에서도 전 그
사람들이 아주 미웠죠.
대통령님 옆에는 누군가가 앉아있었어요. 사람인지, 그림자인지, 그건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검은 그림자처럼 실루엣만 보였어요. 표정도 얼굴도 안 보였고. 뒷모습의 그림자만 보이고 있었어요.
대통령님의 쓸쓸한 미소를 보면서, 정말이지 그분께 다가가고 싶었어요. 다가가서 손을 잡아드리고, 웃어
드리고, 괜찮다고 믿는다고, 힘내시라고 하고 싶었죠. 그런데 못했어요. 감히 가까이 다가가질 못했어요.
그래서 전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꿈속의 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죠.
지금도 그 꿈만 생각하면 눈물이 흘러요. 잊을 수 없고, 잊고 싶지도 않은 꿈이죠. 가슴속에 가시로 박혔어요.
그리고 몇년후에, 그분의 측근과 만날 일이 생겼었어요. 운명처럼. 그분은 단순히 자신의 용무 때문에 찾아온
거였지만, 인연이 되어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죠. 사주며, 성함이며, 현재 상황이며.
무척 힘든 때였어요. 일이 터지고, 그분이 고립되고 있었죠. 싸우려 해도 너무 늦은 게 아니냐, 이런 시기요.
걱정만 하다가 헤어졌어요. 그냥 헤어졌어요.
그리고 한 달쯤 지났던가. 뉴스에서 그분이 돌아가셨다고 했죠.
죽을 것 같았어요. 차라리 죽고 싶었어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미친 사람처럼 통곡했었네요. 그후 일주일간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늦었어도 뭔가를 해야만 했었죠. 무엇이건, 할 수 있는 건 무엇이건 다 해야만 했다고.
제 가족이 죽어도, 전 그렇게 우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때 그토록 울며 괴로워했던 것은, 그분이 제게 있어
단순히 '존경하는 정치인' 뿐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하나의 눈이었어요. 아름답고, 희망으로 빛나는 눈이요. 그 눈을 통해 바라보면 이 세상이 아름다웠어요. 한국
의 국민들을 존경했고, 제가 그들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할 만큼. 그 눈을 통해 보면 사방이 환하게
반짝반짝 빛났었죠.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고, 사람이란 참 아름답다고, 그렇게 믿을 수 있었죠.
그게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산산이 다 부서져 버리더라고요.
그분이 너무 커 보였어요. 너무나 커서, 그만큼 그분이 아주 강한 분처럼 보였었어요. 크지만 약한 분이라는 걸,
그분에게도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걸, 그 아주 당연한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죠. 몰라야 편하니까. 몰라야
내 마음이 편한 거니까. 그저 그분이 이겨내주기만 바라고 있을 뿐, 손을 잡아드릴 기회가 왔을 때에도 멍청하게
쳐다보고만 있었죠. 그 꿈이 그대로 되어버린 거에요. 현실로.
모르겠네요. 제가 지금 이 오래전 꿈 이야기를 왜 여기 하고 있는 건지.
사실 오래전에, 82에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었어요. 다시 읽고 싶으니 제발 삭제하지 말라는 댓글도 있었지만,
제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삭제했었어요. 그리고 82를 떠났었죠. 최근 대선을 앞두고 다시 여기 왔지만. 그렇지만
이제 다시 돌아갈 때가 되었나봐요. 그래서 인사 삼아,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여기 올렸던 제 소소한
댓글들도 하나하나 지우고 있고요.
옛꿈인데도, 옛일인데도, 이렇게 글로 쓰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고 숨이 차요.
사실 이번에 대선, 전 문재인님이 되질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 일 이후로 이 나라의 국민들을 믿지
못하게 되어버렸거든요. 혼자 싸우게 방치하고, 지켜주지도 않고, 뭔일만 생기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며
킬킬대던 사람들을 증오하게 되었죠. 저 자신도 용서하지 못해요. 그 사람들도 용서하지 못해요. 도저히, 그전
처럼 행복한 눈으로 이 나라를 바라볼 수가 없게 되었죠.
그래서 문재인님이 당선되질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가여워서. 힘든 길 걸어가실 게 너무 가여워서.
새로운 시대를 열려면 고귀한 희생양이 있어야한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그 희생양이 하필이면 제가 사랑하는
존재들이라면, 그건 정말,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어요. 이기적이란 건 알죠. 근데 어쩌겠어요. 제 그릇이 그것
밖에 안 되는데. 그래서 지금 저는 쓸쓸하면서도 한편으론 안도하고 있어요. 또다시 잃는 것은 견딜 수가 없어요.
계속 생각했었거든요. 그 꿈을 떠올리면서.
노대통령님은 대통령에 올랐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지 않으셨을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래도 또 선거에
나오실까. 그래도 역시 고집스레 같은 길을 걸어가실까. 그리고 우리는 반복해서 또 그분을 잃게 되는 걸까...
이 시대 이 나라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존재들을 잃게 되는 걸까요.
그래도, 열심히 발로 뛰며 선거를 위해 애쓰던 이곳 분들에게 감사했어요.
박근혜가 약간의 차이로 이길 거란 말은 이미 전부터 듣고 있었어요. 아주 가까운 사람들 외엔 그 말을 함부로
옮기지 않고 입을 닫고 있었죠. 뭐 좋은 말이라고 하겠어요. 열심히 뛰는 사람들에게 그게 뭐 좋은 말이라고...
차마 받아들이기 어려운 마음도 컸지요. 듣기 싫은 말은 부정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라. 지금도 사실 그래요.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도 아직 있어요. 어리석죠.
아마 이대로 이곳을 떠날 분들도 많겠죠. 찻잔속의 태풍에 질려 인터넷 자체를 멀리하게 될 분들도 있겠죠.
그래도 그렇게 열심히 뛰었던, 자신의 마음만큼은 잊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열심히 했던 그 마음조차 부정한다면, 그건 정말 너무 슬픈 일이네요.
상처 받은 마음에 서로를 할퀴고 탓하는 일도 그만했음 좋겠어요. 열심히 했잖아요. 잘 싸웠어요.
그래도 시간은 흘러요. 올해 몸과 마음이 심하게 아프고 경제 상황이 무너지던 분들 중에 상당수는, 내년이 되면
다시금 희망이 생길 거에요. 죽을 만큼 힘든 것도 끝이 있지요.
다들 건강 잘 돌보시고요. 이런 때일수록 건강을 잘 지켜야죠.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만의 힘을 얻는 것.
힘이 있어야 사랑하는 사람과 소중한 세상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시대에 저는 반복해서 배우고 있어요.
무력한 채로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하죠.
제발 우리들의 세상이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기를.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언젠가, 해피엔딩을 보고 싶네요. 끝내 이기리라는 노래가 현실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