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결심의 출발선에는 2010년 2월 '사랑의 리퀘스트' 팀과 함께 대지진에 신음하던 아이티를 방문한 시간이 놓여 있다. 현지에서 만난 아이들의 눈망울이 그를 움직였다.
"그 고통의 땅에서 아이들은 웃고 있었어요. 천진난만하게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저를 바라보았어요. '이 아이들이 고통을 이기고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값질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처럼 가슴 설레는 일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이티에서 돌아온 후 그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홍보대사가 됐고 경기도 광주의 한사랑영아원 등을 정기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휴가를 내 캄보디아와 스리랑카에 봉사활동을 다녀오기도 했고 다문화가정 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시간도 가졌다.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나갔다. 자신의 시간들을 좀 더 알차게 쪼개서 많은 나눔을 실천하고 싶어진 것이다.라는 내용의 기사인데요~~~
"그 고통의 땅에서 아이들은 웃고 있었어요. 천진난만하게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저를 바라보았어요. '이 아이들이 고통을 이기고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값질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처럼 가슴 설레는 일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이티에서 돌아온 후 그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홍보대사가 됐고 경기도 광주의 한사랑영아원 등을 정기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휴가를 내 캄보디아와 스리랑카에 봉사활동을 다녀오기도 했고 다문화가정 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시간도 가졌다.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나갔다. 자신의 시간들을 좀 더 알차게 쪼개서 많은 나눔을 실천하고 싶어진 것이다.라는 내용의 기사인데요~~~
갑자기 프리선언이라 의아했는데~~이런 마음에 응원하고 싶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