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밀양에 갔을때 노인은 내게 말했다 이 정부가 제 나라 국민을 침략하고 있다고

달쪼이 조회수 : 1,683
작성일 : 2012-07-31 20:06:16

좋은 글이라 꼭 함께 읽어봤으면 해서 가져왔어요.
작금의 두물머리 시민 불복종운동이 갖는 의미를 조목조목 잘 풀어내어 써주셨습니다.


고병권 수유너머R 연구원의 프레시안 기고글입니다.

전문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20730165405 ..






미국에서 '월가점거시위'를 목격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두물머리를 찾은 적이 있다. 
그때 밭에 꽂혀 있는 푯말에서 인상적인 문구를 보았다. '불법경작단.' 전체 11가구 중 지난 해 7가구가 정부의 회유와 압박을 이기지 못해 떠났을 때, 두물머리 농부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불법경작자'를 자임하며 그 땅에 상추를 심고 고추를 심고 토마토를 심은 것이다. 
"그들이 농부들을 불법경작으로 고발한다면, 우리 모두가 무수하고도 무고한 '피고'가 되자."  
지난 4월에 '두물머리밭전위원회'가 출범했을 때 시민들이 선언한 문장이다.(...)


두물머리에서 기꺼이 '불법경작자'를 자임하며 상추를 심고 고추를 심고 토마토를 심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나는 작년 11월 17일 뉴욕에서 보았던 한 시위 장면이 생각났다. 뉴욕시 당국이 월가 점거 운동의 상징적 장소인 '리버티스퀘어(주코티공원)'를 기습 철거했을 때 이틀 뒤 수만 명의 뉴욕시민들이 맨해튼 거리로 뛰쳐나왔다. 평소 리버티스퀘어를 점거하고 있던 사람들은 수백 명에 불과했고, 정부는 이들 소수의 점거자들이 전체 시민들의 안전하고 쾌적한 공원 이용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정작 시민들은 정부의 철거에 분노를 터뜨리며 도심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날 밤 경찰이 설치한 대형전광판에는 도로에 내려선 사람을 연행하겠다는 문구가 번쩍였고 무장경관들은 수갑을 내비치며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때 예닐곱의 시민들이 천천히, 경찰에게 보라는 듯 도로에 내려섰다. 한 시민이 도로에 내려서면 그는 인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나면 또다른 시민이 뛰어와 그 손을 잡고 도로에 내려서고 다시 인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렇게 해서 그날 수백 명의 시민이 연행되었다.

시민 불복종이었다. 언뜻 보면 그들은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불법보행자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민불복종은 개별 법조항을 넘어서 더 근본적인 것에 대한 항의 행동이다. 앞서의 <동아일보> 기자는 '무력한 공권력'이라고 했지만, '공권력', '법의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라는 물음을 우리는 던져 볼 필요가 있다. 법전에 써 있는 문장들은 그 '힘'을 어디서 가져오는 것일까. 그것은 그 법들을 떠받치고 있는 그 '무언가'로부터 나온다. 그 '무언가'를, 철학자 조르지오 아감벤은 '권위(auctoritas, authority)'라고 했다. 법에 '힘'을 줌으로써 법을 법(실정법)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그 법을 떠받치는 '권위'이다.(...) 


근대 사회는 시민들을 주권자로 내세우는 체제이자 시민들의 복종에 의존하는 체제이다. 그러므로 법에 대한 시민 불복종은 표면상으로는 개별적인 법조항 하나를 어기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법의 근간이 되는 권위에 대한 인정의 철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법의 권위에 대한 인정을 철회해도 공권력이 행사하는 물리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권위를 박탈함으로써 공권력이 갖는 외견상의 힘은 그대로 있다. 경찰봉과 방패의 힘도 그대로이고 공사용 굴착기의 힘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사라지는 것은 공권력이 가진 '공적 성격'이다. 그런데 그것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공권력과 사적폭력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앞서의 뉴욕 시민들은 리버티스퀘어의 철거를 단행한 뉴욕시 당국의 행동에서 공적 성격을 박탈한 것이다. 경찰에 끌려가지만 그 철거를 공무집행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불복종을 통해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공적 성격이 부인된 공권력이란 조폭 등 사적 패거리들이 휘두르는 폭력과 다르지 않다.


몇 주 전에 밀양에 갔을 때 주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송전탑 설치를 강행하는 한전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부를 향해 한 노인은 내게 말했다. '이 정부가 제 나라 국민을 침략하고 있다'고. 용산의 철거민들도,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도, 강정의 사람들도 마찬가지 심정일 것이고, 그들의 고통을 깊이 공감하는 많은 시민들 또한 그럴 것이다. 한 나라의 많은 시민들이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에도 정부가 '법'과 '공권력'에 대한 복종만을 요구한다면, 사람들은 정부에 부여된 '공공성'을 박탈하게 될 것이다. 즉 법에 힘을 주는 권위에 대한 인정을 철회할 것이다. 
그 순간 정부는 형식상으로만 정부이고 실제로는 더 이상 정부가 아니게 된다. 
시민들에게는 정부가 정부라기보다 제 집단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일개 패거리로 비치는 것이다.

두물머리에서 나는 이것을 느낀다. 농부는 농부로 남기 위해 법을 어기는데 공동체와 생태라는 공공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처럼 보이고, 정부는 법을 지키기 위해 공권력을 행사하는데도 건설업자들의 사적 이해에 복무하는 것 같은 느낌말이다. 지난 40년 간 합법적 점용권을 갖고 친환경 농사를 고민한 사람들에게 그 '점용권'을 간단히 빼앗아 범법자로 만들고, 그런 권리가 마구 허용될 수 없는 것임에도 마치 여기를 허용하면 전국적으로 난리가 날 것처럼 떠들어대는 것(그런 난리가 났을 거면 지난 40년간 이미 무수히 났을 것이다). 게다가 이곳 농부들만이 아니라 여러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음에도, 자전거 도로와 잔디공원을 반드시 이곳에 깔아야 한다고, 그것도 조금의 우회조차 할 수 없다고 고집하는 것. 35억이라는 예산을 지금 당장 쓰지 않으면 이 나라에서 사라지는 듯 법석을 떠는 것(이 공사에 쓰지 않으면 국고로 들어가 다른 곳에서 시민들을 위해 쓰일 수도 있고, 최소한 예산을 아끼는 일이라도 될 터인데 말이다). 
내 눈에는 이 모든 것들이 올해 임기가 끝나는 특정인과 이 사업에 관여하는 특수한 이해당사자들을 위한 것으로만 보인다.


정말 안타깝게도 이 정부는 법을 집행하면서 법의 근간을 허물고 공권력을 휘두르면서 그 공공성을 잃어가고 있다. 점차 많은 시민들이 그 권위를 부인해 가는데, 정작 정부와 법의 토대가 무너져 가는데, 그 위에서 칼춤을 추고 삽질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두물머리의 네 농부는 비록 '합법적 점용권'을 잃고 '불법경작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농부로 남을 수 있다. 
그러나 법의 이름으로 힘만을 과시하는 정부가 있다면 그 정부는 더는 정부로 남지 못할 것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P : 220.120.xxx.82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2.7.31 8:31 PM (112.155.xxx.72)

    감동적인 글이네요.
    mb는 취임 순간 부터 법치법치 하는데 법이라는 게 결국 국민들,
    특히 힘없는 국민들을 잘살게 하기 위해 만든 거 아닙니까?
    그걸 칼자루를 거꾸로 들고 약한 국민들을 향해 겨누면서
    대기업 토건 업자들 편만 드니.
    법의 정신이 사라졌죠.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37123 인천에서 아이들 키우기에 가장 좋은 곳이... 3 ? 2012/08/01 2,349
137122 9월 1일부터 14일까지 유럽여행 가는데, 날씨 많이 더운가요?.. 오뎅 2012/08/01 8,810
137121 강남역 근처 피부과 추천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5 balent.. 2012/08/01 2,326
137120 박용성 "조준호 판정 번복, 오심 아니다" 7 샬랄라 2012/08/01 2,645
137119 이마트 트레이더스에 파는 이 빨래 건조대 써보신분 계신가요? 8 ㅇㅇ 2012/08/01 4,742
137118 금호역 앞에 브라운스톤 아파트 잘 아시는분께 조언 구합니다. 4 금호동 2012/08/01 3,075
137117 자식키워 나중에 바라면 안된다는 건 여기 며느리 글만 봐도 알수.. 31 노후는 스스.. 2012/08/01 4,959
137116 고2 엄마입니다 ... 2012/08/01 1,433
137115 서울에도 폭염 주의보가 내렸네요 7 성동구민 2012/08/01 2,666
137114 올림픽 공식 계측 업체 오메가 "펜싱 판정 정당&quo.. 샬랄라 2012/08/01 1,375
137113 오션월드, 수영모자 꼭 필요한지요? 4 넘 더워요... 2012/08/01 9,273
137112 서울근처 1박2일 가족여행지 추천해주세요 1 성현맘 2012/08/01 8,679
137111 무더위에 물끓여 먹기 5 무더위 2012/08/01 2,622
137110 폐경관련 질문입니다. 3 질문 2012/08/01 3,398
137109 신사의 품격 보신 분~ 2 윤이랑 메알.. 2012/08/01 1,684
137108 냉장고 조합 좀 도와주셔요~~ 6 상초보주부 2012/08/01 1,547
137107 80이신 친정 엄마 치매 검사 받고 싶은데 병원 추천해주세요. 9 엄마 딸 2012/08/01 3,329
137106 제수씨 대신 이름부르면 실례인가요? 7 이름쓰고 싶.. 2012/08/01 2,397
137105 중국돈이 있는데 이걸 어떻할까요? 1 위안화 2012/08/01 1,156
137104 에어컨 벌써 343k~ 4 참맛 2012/08/01 2,247
137103 비가 와야 하는데.. 시골은 가뭄이라네요.. 4 2012/08/01 1,335
137102 지금 울산에 바람 엄청 붑니다 지금 2012/08/01 1,290
137101 저도 묻어서 질문 - 유산문제 비스무리 18 싸이클론 2012/08/01 2,995
137100 내년12월에 이사할 예정인데 지금 에어컨 달자니 갈등입니다. 7 마리우스 2012/08/01 1,841
137099 역시 국제대회에서는 국력이 모든 걸 말해주네요. 재수없어요. 13 2012/08/01 2,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