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이 시기에 다시읽어보는 김여진씨의 칼럼

성주참외 조회수 : 598
작성일 : 2012-04-16 13:18:41
나는 모른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다. 보통사람이 농사를 지으면 남들이 하는 방식대로 남들이 하는 만큼 열심히 지으며 남들보다 더 많은 수확을 얻기를 바란다. 현명한 사람은 남들보다 좀더 연구를 하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면서 대부분의 경우 남들보다 많은 수확을 얻는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도 분명 있다. 날씨 때문일 수도 있고 운 때문일 수도 있다. 실망스럽고 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더 열심히 노력한다.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이 있다. 농사를 이렇게도 지어 보고 저렇게도 지어 본다. 여러 경우를 관찰하고 문제점을 알아내고 기발한 방법을 시도해 본다. 여태 누구도 해보지 않은 방법이라 사람들은 안 될 거라고 말한다. 많은 경우 실패해서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그러다 정말 획기적인 새로운 농법을 발견한다. 많은 수확을 얻는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방법도, 수확물도 미련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줘 버린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의심하고 조롱한다. 사기꾼이라고도 하고 바보라고도 한다. 이 사람은 또다른 방법을 찾는 데 몰두한다. 농사를 짓고, 연구하고, 모험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즐거움을 누렸기 때문이다. 결과물이야 누가 쓰든 크게 관심이 없다. 보통사람들은 그를 모른다. 성자라 치켜세우든 바보라 놀려대든 정확히 그가 누리는 그 기쁨의 실체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다. 그가 하는 모험이 성공할 경우 존경하고 실패할 경우 손가락질할 뿐이다.

최근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안철수라는 사람에 대해 나는 모른다. 서너 번 직접 보았을 뿐이다. 함께 청춘콘서트를 했고 그의 말을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질문에든 명쾌한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었다. “답”이라고 단언하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얼버무려 말하는 법도 없었다. 부드럽고 쉽게 말한다. 그 사람이 살아온 행적에 대해 들었다. 의사라는 직업을 툭 버리고 컴퓨터를 치료하는 백신을 만들고 회사를 경영했다. 어느 날 가지고 있던 60억원의 주식을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다시 과학자의 길을 간다. 학교의 행정을 맡는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돈이나 권력, 명예가 아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의미가 있는 일, 자신이 잘 “쓰일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선다. 몰두한다. 거기서 기쁨을 얻는다.

그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할 고심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 역시 깜짝 놀랐다. 나를 더 깜짝 놀라게 한 건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본인의 입에서 그 어떤 얘기도 나오기 전, 단 2~3일 동안의 그 소동은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그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한 번이라도 그의 생각을 듣거나 읽어본 사람은 할 수 없는 추측들이 난무했다. 그를 모를수록, 그와 가장 먼 얘기들을 가장 확신에 찬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단 이틀을 기다리지 못해 그를 적으로 만들고야 마는 조급함에 어리둥절했다.

기존의 틀, 흔히 말하는 ‘진보와 보수’가 아닌 ‘상식과 비상식’의 구도를 말했던 그는 하루아침에 ‘새로운 보수’라는 전혀 새롭지 않은 틀 속에 억지로 끼워맞춰지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연 뒤에는 정확히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잘 모르겠다. 기다려보자”라고만 했어도 그리 섣불리 상처 입히고 우스워지는 일은 없었을 거다. 우리는 그를 모른다. 기존의 틀로 현실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재단하고 확신하는 거야말로 ‘진보’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 태도다. 모르면, 가만히 지켜보면 된다. 오랜 관찰이야말로 모든 ‘과학적 진보’의 시작이다. 섣불리 소리 높여 예단하려 하는 건 “거봐라, 내 그럴 줄 알았다!”라고 우쭐대고 싶은 마음이다. 일의 성패를 빨리 알고 싶어하는 욕심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많은, 실패를 즐기는 모험가를 잃어왔을 거다.



안철수씨 본인 스스로 밝히기 전까지는 우리 조중동에 놀아나지 맙시당..

IP : 211.243.xxx.104
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02125 컴화면 글씨체 어디서 바꾸나요? 1 컴화면 2012/05/01 594
    102124 그게 뭐였는지 알려주세요 5 ㄹㄹ 2012/05/01 1,530
    102123 자동차매연이 담배연기보다 훨씬 안좋다는게 진짜에요? 5 dd 2012/05/01 1,239
    102122 피부과 vs 피부관리원 2 피부관리 2012/05/01 1,020
    102121 발톱이 살을 찌르면 어디로 가야하나요? 8 걷고싶어서 2012/05/01 1,698
    102120 32개월 짜리 아들이 저보고 oh my god 이라네요. ㅋㅋㅋ.. 6 기가막혀 2012/05/01 1,790
    102119 일상생활 한몸 지탱하기도 이렇게 힘든 사람 계신가요? 1 한몸건사 2012/05/01 1,373
    102118 아웃도어 좋아하는 남편 3 옷잘입고파 2012/05/01 1,116
    102117 미국산 원산지 속인 쇠고기 4년간 400톤 5 트윗 2012/05/01 1,150
    102116 임신중 세팅 펌 괜찮을까요? 4 궁금합니다 2012/05/01 1,837
    102115 스테인레스냄비 자석 붙나요? 7 궁금.. 2012/05/01 13,572
    102114 이상적인 사회와 학교는 존재하지 않아요 힘의논리 2012/05/01 640
    102113 시댁은 단식원...ㅜ.ㅜ 97 하우스777.. 2012/05/01 17,363
    102112 육아휴직 1년? 월급은요? 1 고고씽 2012/05/01 1,022
    102111 핸드폰 분실했는데 한전아저씨가 주워주셨어요. 2 감사의글 2012/05/01 863
    102110 중딩 고딩 사내아이 밥 말고 체력 키우기 1 ..... 2012/05/01 878
    102109 영어 두 문장 질문 6 rrr 2012/05/01 587
    102108 돈번다고 집안일 육아는 전혀안하는 남편 정말 화나네요 13 제남편 2012/05/01 6,325
    102107 영문법 잘하는 방법 없나요 5 휴... 2012/05/01 1,064
    102106 조국교수 트윗보니까..김건모씨 27 의외 2012/05/01 9,689
    102105 이수만과 ses 5 .. 2012/05/01 4,375
    102104 문서 보내는 방법좀 가르쳐 주세요! 1 하늘사랑 2012/05/01 603
    102103 남아 포경수술은 병원 무슨 과에서 시켜야 하나요? 4 초딩맘 2012/05/01 2,434
    102102 2011년도 연말정산을 다시 하려고합니다 5 큰딸 2012/05/01 623
    102101 지금 뉴욕 날씨는 어때요?여행가요 1 frank 2012/05/01 7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