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약간 찌라시스럽습니다만 ㅜ.ㅜ....
지난 주 이곳에서 여러 가지 교육 이야기가 큰 화두가 되었던 것의 연장으로
저도 살짝 동참해 봅니다. *^^*
그 중에서도 제가 이런 글을 쓰게 된 결정적 계기는 교육관련 글에
어떤 분이 댓글로 아이가 5학년인데 지금이 공부습관을 잡아줄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싶다고 쓰셨더라구요. 아, 절대 이 분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요,
뭐, 저도 똑같습니다.
7살난 외동아들을 키우고 있는 저 역시도,
“아들아...어느 집 아들은 삼국지도 읽는다는데, 너는 아직도 아기돼지 삼형제냐..ㅜ.ㅜ...”
“이놈아,,,어느 집 딸은 논술학원도 다닌다는데, 넌 개그콘서트도 이해못하냐..!!!"
이런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번씩 드는 그런 엄마입니다.
이런 저의 마음도 다독일 겸, 혹시 한분이라도 제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 이야기를 써보려고요.
네, 고1때 저의 내신 등급은 전체 15등급 중 8등급이었습니다. 딱 중간이군요.
밝혀두자면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특목고였는데요, 제가 지금 30대 후반이니
저희때의 특목고는 지금보다는 훨씬 들어가기가 수월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우수한 형제들 사이에서 뭐든지 느리고 몸도 약하고 사교성도 없던 저는
부모님의 가장 맹목적인 애정과 그리고 가장 작은 기대를 받는 아이였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들이 저를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겼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천재 영재 소리를 듣던 자식들에게 거는 커다란 기대와 높은 수준을
저에게는 그냥 건강하게 학교 다니는 것만으로도 장하다.로 변형시켜 적용해주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전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동안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에게
한번도 제 이름으로 불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000동생’ 이었지요.
뭐,,그것도 별 불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2때 , 아마도 사춘기이였겠지요.
고등학교까지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구 화가 나더군요.
그래서 공부를 했습니다. 뺑뺑이로 돌리면 당연히 또 남녀공학에 있는 오빠와
같은 고등학교로 갈 테니 죽어라 공부해서 특목고를 가는 길만이 그것을 피할
방법이었죠. 이때는 아마도 공부의 가장 1차적인 자극제인 “경쟁심”이 저를
공부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음..단기간의 효과는 있었으나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습니다...
어쨋든 그리하여 저는 특목고에 입학을 했지요.
흠..부모님도 친척들도 칭찬해주시고, 저도 뭐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아,,이제 좀 놀아도 누가 뭐라고 안하겠지..”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놀았습니다.
내신이고 뭐고, 대입은 먼 훗날의 일처럼 느껴졌구요. 시험 때 겨우 2,3일 교과서 훑어보고 가서는 8등급이라도 했으니
이제와 생각하면 장하다는 생각까지 드는군요.
그래서 이 놀던 가락으로 고2가 되었는데,
아이들이 저를 덜컥 부반장으로 뽑아주었습니다. 왜,,그런 구도 있잖아요..학습 담당 반장 + 레크레이션 담당 부반장...
그런 거였죠.^^;;;;
그리고 담임선생님 면담을 갔는데, 저의 고1때 성적표를 가지고 계시더군요.
사실 제가 8등급이라는 정확한 수치도 그때 알았습니다. 후훗...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다짜고짜 제 머리통을 콩 치면서
“이놈아, 부반장이란 놈 성적이 이게 뭐야?” 그러시더군요.
참내,,여기와서도 성적으로 무시당하는구나 싶어, 저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들었죠.
임원을 성적 순으로 뽑냐고, 그럼 투표는 왜하냐고요.
그래도 허허 웃으시면서 “이놈아, 하면 잘할 놈이 왜 안해서 성적을 이 지경을 해놔?”
음,,새학기 임원되고 면담했으니 그게 거의 처음 해본 대화였는데 저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속으로는 “웃기고 있네,,언제 봤다고...”뭐 이 정도의 싸가지 없는 소리를
쭝얼거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선생님께서 제 얼굴을 똑바로 보고 말씀하시더군요.
“넌 하면 잘할 놈이야. 내가 알아. 내가 선생 노릇 30년이 다 되가...김선생, 얘 좀봐요.
우리 반 부반장 된 놈인데, 이놈 공부 자알~하게 생겼죠..”뭐 이런 식으로요.
뭐,,이 한번의 말에 제 마음이 감동감화하며 눈물을 철철 흘리고 공부태세에 돌입했던 건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 만날 때마다, 작은 일에도 늘 저런 식으로 말씀해주시니,
뭐 말대접으로라도 공부를 조금은 해가야지 싶더라구요.
초등 6년, 중학교 3년 동안 “야, 넌 니 오빠 반만 따라가도 잘할텐데, 어째 그모양이냐?” 소리만 듣고 살던 저에겐
저런 말씀들이 사실 고마웠었나 봅니다.
공부를 하니 성적이 조금씩 오르더군요.
물론 순식간에 1,2등을 거머쥐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8등급에서 7등급으로 다시 6등급으로...
어찌보면 8등급이나 6등급이나 , 이렇게 생각해버릴 수도 있을 텐데 저희 선생님은 정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 주셨습니다. “거봐, 내 말이 맞지,, 넌 하면 될놈이라니까...야..이놈을 이거 어디 가서 자랑하나...”
겨우 6등급짜리를 어디 가서 자랑해야할지 모르겠다던 그 말씀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군요.
그런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8등급에서 5등급으로 올라가는 것과 5등급에서 2등급으로 올라가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습니다. 이전에 바닥을 쳤던 내신을 끌어올리자면 거의 전교 5등 안으로 진입해야 하는 건데, 이건 정말 쉽지 않더군요.
참고로 전 공부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
이런 애들은 (저희 다른 형제들같은) ‘공부란 하면 되는 것’ 이었지요. 오빠한테 동생한테 물어봐도 다들 속터지는 답만 해주고, 저는 점점 제 머리통만 원망하게 되고...
어느날 엄마에게 왜 나만 머리를 나쁘게 낳아놨냐고 원망하자, 엄마가 저를 바라보시더니 그러시더군요.
“00아,,하지만 엄마가 키운 세 아이들 중 문제은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푼 애는 너 하나란다.
그건 정말 대단한거야, 너만 해낸 일이라구” 문제은행..아십니까? 정말 오직 양으로 승부하는 그 수북한 문제집..
그 때부터 저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머리가 딸리니 양으로 가자.
그래서 저에게 모든 과목은 다 암기과목이 되었지요.국영수 모두 말입니다.
국어는 책에 나온 내용을 읽고 또 읽고 시중에 나온 왠만한 문제집 다 풀었습니다.
영어는 문장을, 문단을 통째로 외웠습니다. (지난 글에 어떤 분이 문장외우기를 써주셨더라구요. 저도 강추합니다. 문법, 숙어, 단어... 자연스레 해결됩니다.)
수학 역시 암기과목이었습니다. 문제 하나를 풀었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숫자를 바꿔서, 중간에 한 과정을 추가해서,
답이 나오는 과정이 거의 물흐르듯 술술 써질 때까지 쓰고 또 써보고..거의 내 손이 기억할 때까지요.
무식한 방법이지요..그래도 저 같이 기초가 탄탄하지 않은 고딩에게는 이 방법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그리고 또 하나.. 저는 제 공부의 과정을 모두 친구들과 공유했습니다.
제가 개발한 암기법, 예상문제, 교과서 외의 과외나 학원에서 얻게 된 유용한 팁들, 추가 지식들...
모두 친구들에게 신이 나서 말해주고 설명해주고...
근데 말입니다.
제가 이때 얻게된 교훈 하나는 지식이란 내 머릿 속엔 들어있을 때 내 것이 아니라,
그걸 누군가에게 설명해주고 이해시킬 수 있는 수준이 되었을 때 진짜 내 것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집에 와서는 들어줄 친구들이 없으니 엄마를 앉혀놓고 저 노릇을 했습니다.
이 공부법의 또 다른 성과를 들자면 이때의 내공으로 저는 지금껏 어떠한 규모의 프레젠테이션이나 수업도
별 두려움없이 효과적으로 해내는 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부모님들, 아이들이 하는 말이 지루하고 뜬금없고 생소하더라도 잘 귀기울여 주세요.
단, 요기서 포인트는 절대 뭔가를 제안하거나(그래, 그런 방법도 좋지만 이렇게 외워보는 것은 어떠니?),
비판하거나(야, 그게 아니지, 좀 앞뒤가 안맞잖아.),
심지어는 격려조차도!!(그래,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외우면 금방 다하겠다, 그치?).. 아니아니 아니되옵니다!!
그냥 들어주시고 웃어주시고 적당한 호응, 그리고 진정한 호기심에서 우러난 짧은 질문, 요 정도가 딱 좋습니다.
어찌되었건 이런 두 가지 방법을 통해 고2가 끝날 무렵 제 내신은 2등급으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졌군요.. 호응해 주시는 분 3분 이상이시면 2탄, 수능+본고사 이야기 들어갑니다!!하하!!
제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공부 잘하는 비결이나, 저의 인생역전기 같은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어달라는 것, 그리고 칭찬의 힘!
너무나 당연한 이 두 가지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저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구요. 그럼 긴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