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기개에 대하여

기개 조회수 : 905
작성일 : 2012-02-23 00:28:00

최근에 매우 선량한 지인 두 명이 뜻하지 않은 송사에 휘말려 맘고생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어제 사뭇 불미스런 사건을 하나 겪었다. 구체적인 정황을 털어놓는 것은 누구에게도 득될 것이 없기에 적지 않겠지만, 그런 저런 일들을 보고 겪으면서 내가 그동안 인생에 대해 취해온 태도랄까, 이런걸 좀 점검해보게 됐다.


지난 삼십여년간 나는, 오는 사람(일)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일) 잡지 않는다는 자세로 살아왔던 것 같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가늘고 길게, 끝끝내 버티다 보면 해뜰날도 있겠거니, 뭐 그런 소극적인 생각을 주로 해왔던 것 같다. 뭔가에 매이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거니와, 그러지 않았다고 딱히 뭐 뾰죽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긴 했다. 부득불 욕심을 부린게 있다면 집안 기둥 뿌리 뽑아가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한 일 한 가지 뿐인데, 심지어 그러고 나니 아무런 여한이 없어져서 그뒤로는 인생을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있는 지경이다.


그냥,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고 되도록 친절한 마음을 잃지 않으며, 하는 일이 다소간 보람되고 큰 사고가 없기만을 바랐다. 숲속의 나무나 들판의 풀잎처럼 고요히 머물다 고요히 사라져도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숲속의 나무나 들판의 풀잎이라 해도 바람은 결코 빗겨가지 않는다. 분명히 용기를 내야할 때 내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를 구해야 할 때 구하지 않으면 사악한 기운이 나를 침범하게 마련이다. 얼마 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아래와 같은 글귀를 보고 순간적으로 마음에 반성이 되었던 적이 있다.


가진게 많아도 겸손한 사람을 우러르고
가진게 없어도 기개있는 사람을 가까이한다.


곰곰히 지난 몇 년을 돌아보니, 나는 겸손했지만 가진게 없었기 때문에 그 겸손은 별 의미가 없었고, 무엇보다 나쁜 점은 기개조차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딴에는 대범하고 겸손하려 한 것이 (힘을 가진) 상대방에게는 비굴함으로 이해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 자신조차 겸손과 비굴이 혼동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건, 나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건 신경쓰지 않는 것이 나의 방식이었지만, 어떤 면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고 기만하게 놔두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절반쯤은 내 탓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잘못을 저지르도록 방관한 셈이니까 말이다. 아닌 길을 가면서도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 역시 무책임하다. 애초 그 길을 가지 말았어야 하고, 일단 들어섰으면 최선을 다해 사고를 방지할 일이다. 그것은 전혀 구차한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소극성을 탈피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마음을 다해 집중하며 살고 싶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리기 마련이므로, 떠나간 것에 미련을 두기보다 다가올 것을 기대하며 스스로를 갈고 닦자. 중요한 것은 건강한 몸과 맑은 정신, 그리고 살아 있는 영혼을 유지하는 일이고, 다른 것은 모두 그 다음이다. 가진게 없는데 기개마저 잃으면 정말 아무 것도 없는거니까.

 

 

 

IP : 219.251.xxx.204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기개
    '12.2.23 12:29 AM (219.251.xxx.204)

    일기 같은 글이에요.
    다른 분들께 보여두면 각오를 굳건히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적습니다.
    읽어주신 분들께는 감사를 드립니다.

  • 2. 마들렌
    '12.2.23 12:55 AM (61.33.xxx.197)

    생각하게하는글이네요 지금 제 상황에도 필요한 말씀이고요 폰으로 보고있어서댓글쓰기힘드네요 지우지마시길

  • 3. 그럼요
    '12.2.23 3:35 AM (79.199.xxx.91)

    살아있는 영혼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저는 기도를 택했어요.
    아주 오랜동안 그 시간을 가지면서 세상적으로 보이는 것은 없을 지라도
    나를 유지해 주고 내영혼을 맑게 만들어 준 그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님의 기개를 스스로 갈고 닦으시면서 평온을 유지하시길 빌겠습니다.
    아주 좋은 글이라 정말 오랜만에 로긴했네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82249 어린이집 3주이상 빠지게되는 경우요 7 옐로이 2012/03/08 2,081
82248 요양보호사인데 어르신아들이 매일 집에있어요..어르신은 헀던말.. 5 에휴 2012/03/08 4,580
82247 오늘 라디오에서 들었던 웃긴 멘트... 2 이런재치부럽.. 2012/03/08 3,087
82246 여직원 많은 회사 피곤하네요ㅜㅜ 5 개구리왕눈이.. 2012/03/08 3,126
82245 지금 술 드시는 분들 안주 뭐하고 드세요? 14 ... 2012/03/08 2,858
82244 어제 아버지가 "혹시 xx엄마와 재결합 하면 어떻겠냐'.. 3 시크릿매직 2012/03/08 3,704
82243 넷북(acer) 프로그램 재설치하는거 어렵나요?? 2 고장..ㅠ... 2012/03/08 1,373
82242 낼 서울가는데, 서울 날씨 어떤가요? 많이 추운가요? 2 팜므파탈 2012/03/08 1,620
82241 일본산 ‘세슘 수산물’에 뒷북 대응 2 황국시민 2012/03/08 1,636
82240 6학년딸아이가 이 시를 읽더니 6 눈물을 흘리.. 2012/03/08 1,909
82239 제 몸 증상좀 봐주세요-도움 절실... 3 베체트? 2012/03/08 1,843
82238 지금 서울의 날씨는..? 3 나린 2012/03/08 1,321
82237 고등학교 기숙사소위원회면 무슨일하는거예요? 1 rndrma.. 2012/03/08 1,099
82236 동자동녀동숙... 후배 애 이름 난리난 후깁니다 32 민트커피 2012/03/08 10,145
82235 시원시원하고 화끈한 기사.. .. 2012/03/08 1,364
82234 영어학원에서 단어시험을 말하기로 본다는데 4 초5맘 2012/03/08 1,380
82233 족욕기 어떤게 좋을까요? 8 피곤해 2012/03/08 2,258
82232 영어레벨테스트 결과가 애매한가 봐요. 어떤 선택이 현명할까요? .. 5 애매 2012/03/08 1,550
82231 마트에서의 잘못된 계산.. 가져가면 진상되는걸까요? 12 진상? 2012/03/08 3,107
82230 요즘 신발 어떤거 신으세요? 6 ㅓㅓㅓ 2012/03/08 1,945
82229 고양시 화정 근처에 대장 내시경 잘 보는 병원 있나요? 1 o 2012/03/08 1,911
82228 5년전에 3500주고 싼 아파트(지방) 담보로 은행에 돈 빌리려.. 1 .. 2012/03/08 1,404
82227 여승무원 복장규제 논란 어떻게 생각하세요. 11 123 2012/03/08 2,933
82226 내일 아파트 매도 잔금일이에요.. 1 부동산 2012/03/08 1,668
82225 여자아이들 보통 이갈이 몇살때하나요? 5 2012/03/08 3,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