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Banner

기개에 대하여

기개 조회수 : 1,053
작성일 : 2012-02-23 00:28:00

최근에 매우 선량한 지인 두 명이 뜻하지 않은 송사에 휘말려 맘고생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어제 사뭇 불미스런 사건을 하나 겪었다. 구체적인 정황을 털어놓는 것은 누구에게도 득될 것이 없기에 적지 않겠지만, 그런 저런 일들을 보고 겪으면서 내가 그동안 인생에 대해 취해온 태도랄까, 이런걸 좀 점검해보게 됐다.


지난 삼십여년간 나는, 오는 사람(일)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일) 잡지 않는다는 자세로 살아왔던 것 같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가늘고 길게, 끝끝내 버티다 보면 해뜰날도 있겠거니, 뭐 그런 소극적인 생각을 주로 해왔던 것 같다. 뭔가에 매이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거니와, 그러지 않았다고 딱히 뭐 뾰죽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긴 했다. 부득불 욕심을 부린게 있다면 집안 기둥 뿌리 뽑아가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한 일 한 가지 뿐인데, 심지어 그러고 나니 아무런 여한이 없어져서 그뒤로는 인생을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있는 지경이다.


그냥,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고 되도록 친절한 마음을 잃지 않으며, 하는 일이 다소간 보람되고 큰 사고가 없기만을 바랐다. 숲속의 나무나 들판의 풀잎처럼 고요히 머물다 고요히 사라져도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숲속의 나무나 들판의 풀잎이라 해도 바람은 결코 빗겨가지 않는다. 분명히 용기를 내야할 때 내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를 구해야 할 때 구하지 않으면 사악한 기운이 나를 침범하게 마련이다. 얼마 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아래와 같은 글귀를 보고 순간적으로 마음에 반성이 되었던 적이 있다.


가진게 많아도 겸손한 사람을 우러르고
가진게 없어도 기개있는 사람을 가까이한다.


곰곰히 지난 몇 년을 돌아보니, 나는 겸손했지만 가진게 없었기 때문에 그 겸손은 별 의미가 없었고, 무엇보다 나쁜 점은 기개조차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딴에는 대범하고 겸손하려 한 것이 (힘을 가진) 상대방에게는 비굴함으로 이해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 자신조차 겸손과 비굴이 혼동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건, 나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건 신경쓰지 않는 것이 나의 방식이었지만, 어떤 면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고 기만하게 놔두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절반쯤은 내 탓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잘못을 저지르도록 방관한 셈이니까 말이다. 아닌 길을 가면서도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 역시 무책임하다. 애초 그 길을 가지 말았어야 하고, 일단 들어섰으면 최선을 다해 사고를 방지할 일이다. 그것은 전혀 구차한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소극성을 탈피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마음을 다해 집중하며 살고 싶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리기 마련이므로, 떠나간 것에 미련을 두기보다 다가올 것을 기대하며 스스로를 갈고 닦자. 중요한 것은 건강한 몸과 맑은 정신, 그리고 살아 있는 영혼을 유지하는 일이고, 다른 것은 모두 그 다음이다. 가진게 없는데 기개마저 잃으면 정말 아무 것도 없는거니까.

 

 

 

IP : 219.251.xxx.204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기개
    '12.2.23 12:29 AM (219.251.xxx.204)

    일기 같은 글이에요.
    다른 분들께 보여두면 각오를 굳건히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적습니다.
    읽어주신 분들께는 감사를 드립니다.

  • 2. 마들렌
    '12.2.23 12:55 AM (61.33.xxx.197)

    생각하게하는글이네요 지금 제 상황에도 필요한 말씀이고요 폰으로 보고있어서댓글쓰기힘드네요 지우지마시길

  • 3. 그럼요
    '12.2.23 3:35 AM (79.199.xxx.91)

    살아있는 영혼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저는 기도를 택했어요.
    아주 오랜동안 그 시간을 가지면서 세상적으로 보이는 것은 없을 지라도
    나를 유지해 주고 내영혼을 맑게 만들어 준 그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님의 기개를 스스로 갈고 닦으시면서 평온을 유지하시길 빌겠습니다.
    아주 좋은 글이라 정말 오랜만에 로긴했네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797193 얼굴 기름종이 가장 순한거 추천해주세요 도움절실 14:22:05 11
1797192 구성환 배우 꽃분이가 무지개 다리 건넜나봐요 ㅠㅠ 4 ... 14:18:11 315
1797191 왕사남 보고 왔어요. 오열 14:18:11 113
1797190 재수하게 됐는데 1년 모의고사 일정표? .. 14:17:34 44
1797189 패키지 뭐 하까요? 이집트 14:16:24 82
1797188 여유있는 7~80대 선물 뭐할까요? 4 14:14:17 161
1797187 대학졸업하는 아이들 뭐 사줄까요? 2 ........ 14:11:24 145
1797186 수학못하는 아이 이런 공부방법 어떤가요? ㅇㅇ 14:10:10 84
1797185 요즘 젊은이들의 직장생활에 대한생각 10 ㅇㅇ 14:08:10 342
1797184 예쁜데하면 어쩌라고 싶은데요? 25 지나다 14:03:05 644
1797183 뉴이재명운영관리자 페북 글 3 13:55:52 215
1797182 남편과 외식갔다왔는데 (좀 비위 약한사람 패스) 7 밥먹다 13:54:04 788
1797181 나이 들어서 이쁨 = 건강 아닐까 싶어요. 3 음.. 13:51:32 452
1797180 신혜선 닮은얼굴이 탕웨이, 한고은이요 9 .... 13:49:52 524
1797179 머리카락 제일 안걸리는 로청 뭘까요? 2 .. 13:47:53 359
1797178 민주당의원님들~~~~정신차려요 지금 머가중한디?? 14 어머 13:45:11 350
1797177 갑자기 햇살이 따갑네요 1 13:40:02 350
1797176 요새 매불쇼에서 세탁중인 이정주 8 이정주 13:39:39 755
1797175 검머외국인. 쿠팡 김범석 = 홈플러스 MBK마이클 김 2 .. 13:39:36 487
1797174 평소에 예물 다이아반지 끼고 다녀도 괜찮을까요? 4 13:26:24 641
1797173 신혜선 대사 너무 힘드네요 21 국어책 읽기.. 13:23:45 2,158
1797172 패딩 집에서 세탁기로 돌려도 되나요? 14 //// 13:22:43 1,111
1797171 전세금 무사히 받아서 나올수있을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9 ㅇㅇ 13:20:42 1,077
1797170 봄보다 더 따뜻해요 언능 밖으로 5 오늘 13:08:35 1,031
1797169 ㄷㄷ우원식도 89표 받은거 아세요? 어디서 많이 본 숫자죠? 32 .. 13:02:34 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