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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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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의 엄마

123 조회수 : 17,815
작성일 : 2011-12-29 12:44:47

엄마



글 : 김어준 (인터넷신문 딴지일보 총수)




고등학생이 돼서야 알았다. 다른 집에선 계란 프라이를 그렇게 해서 먹는다는 것을. 어느 날 친구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반찬으로 계란 프라이가 나왔다. 밥상머리에 앉은 사람의 수만큼 계란도 딱 세 개만 프라이되어 나온 것이다. 순간 ‘장난하나?’ 생각했다. 속으로 어이없어 하며 옆 친구에게 한마디 따지려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젓가락을 놀리는 친구의 옆모습을 보고 깨닫고 말았다. 남들은 그렇게 먹는다는 것을.





그때까지도 난 다른 집들도 계란 프라이를 했다 하면, 4인 가족 기준으로 한 판씩은 해서 먹는 줄 알았다. 우리 엄마는 손이 그렇게 컸다. 과자는 봉지가 아니라 박스 째로 사왔고, 콜라는 병콜라가 아니라 PET병 박스였으며, 삼계탕을 했다 하면 노란 찜통-그렇다, 내ㅁ비가 아니라 찜통이다-에 한꺼번에 닭을 열댓 마리는 삶아 식구들이 먹고, 친구들까지 불러 먹이고, 저녁에 동네 순찰을 도는 방범들까지 불러 먹이곤 했다.



엄마는 또 힘이 장사였다. 하룻밤 자고 나면 온 집안의 가구들이 완전 재배치되어 있는 일이 다반사였다. 가구 배치가 지겹거나 기분 전환이 필요하면 그 즉시 결정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가구를 옮기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잦으니 작은 책상이나 액자 따위를 살짝 옮겼나보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사할 때나 옮기는 장롱이나 침대 같은 가구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끌려 다녔으니까. 오줌이 마려워 부스스 일어났다가, 목에 수건을 두르고 목장갑을 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가구를 혼자 옮기고 있는 ‘잠옷바람의 아줌마가 연출하는 어스름한 새벽녘 퍼포먼스’의 기괴함은 목격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새벽 세 시 느닷없이 깨어진 후 팬티만 입은 채 장롱 한 면을 보듬어 안고 한 달 전 떠나왔던 바로 그 자리로 장롱을 네 번째 원상복귀 시킬 때 겪는 반수면 상태에서의 황당함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재수를 하고도 대학에 떨어진 후 난생 처음 화장실에 앉아 문을 걸어 잠그고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 화장실 문짝을 아예 뜯어내고 들어온 것도 우리 엄마가 아니었다면 엄두도 못낼 파워풀한 액션이었다. 대학에 두 번씩이나 낙방하고 인생에 실패한 것처럼 좌절하여 화장실로 도피한 아들, 그 아들에게 할 말이 있자 엄마는 문짝을 부순 것이다. 문짝 부수는 아버지는 봤어도 엄마가 그랬다는 말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듣지 못했다.




물리적 힘만이 아니었다. 한쪽 집안이 기운다며 결혼을 반대하는 친척 어른들을 향해 돈 때문에 사람 가슴에 못을 박으면 천벌을 받는다며 가족회의를 박차며 일어나던 엄마, 그렇게 언제나 당차고 씩씩하고 강철 같던 엄마가, 보육원에서 다섯 살짜리 소란이를 데려와 결혼까지 시킬 거라고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담당 의사는 깨어나도 식물인간이 될 거라 했지만 엄마는 그나마 반신마비에 언어장애자가 됐다.






아들은 이제 삼십 중반을 넘어섰고 마주 앉아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할 만큼 철도 들었는데, 정작 엄마는 말을 못한다. 단 한 번도 성적표 보자는 말을 하지 않았고 단 한 번도 뭘 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화장실 문짝을 뜯고 들어와서는 다음 번에 잘하면 된다는 위로 대신에, 그깟 대학이 뭔데 여기서 울고 있냐고, 내가 너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며 내 가슴을 후려쳤던 엄마, 사실은 바로 그런 엄마 덕분에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그 어떤 종류의 콤플렉스로부터도 자유롭게 사는 오늘의 내가 있음을 문득 문득 깨닫는 나이가 되었는데, 이제 엄마는 말을 못한다.






우리 가족들 중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병원으로 찾아와, 엄마의 휠체어 앞에 엎드려 서럽게 울고 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사신 거냐' 고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데 말이다.






*이 글은 월간 <샘터>와 아름다운 재단이 함께하는 '나눔의 글잇기' 연작으로 월간 <샘터 2003년 2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글쓴이 김어준 님은 아름다운 재단이 벌이고 있는 '아름다운 1% 나눔' 캠페인에 참여해 이 글의 원고료 전액을 아름다운재단 공익출판기금에 기부했습니다.

[출처] 김어준의 엄마(펌) (♥김어준 팬카페 :: 김어준과 지식인들♥) |작성자 꼴ㅎ통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mbsIdx=464291&cpage=1&...

IP : 119.196.xxx.230
3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진짜
    '11.12.29 12:49 PM (110.12.xxx.91)

    다른 김어준씨 아니고 우리가 아는 김어준씨 맞죠?
    흑흑........역시 대단하신 어머니들 두셨군요. 지금쯤은 어찌 계실런지?
    어머님 고맙습니다. 훌륭하신 아들을 낳으시고 길러주셔서.

  • 2. ...
    '11.12.29 12:50 PM (218.234.xxx.15)

    목에 수건을 두르고 목장갑을 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가구를 혼자 옮기고 있는 ‘잠옷바람의 아줌마가 연출하는 어스름한 새벽녘 퍼포먼스’의 기괴함은

  • 3. ㅋㅋ
    '11.12.29 12:51 PM (211.41.xxx.106)

    저도 건투를 빈다에서 본 부분이에요. 진짜 통도 크고 힘도 세고 여장부 스타일이셨나 봐요. 보육원인지 유아원인지 운영하셨다죠. 휠체어 앞에서 울고 가는 생면부지의 사람... 저 부분은 처음 보는데, 그냥 어떤 사람인지 짧게 말해주네요...소란이라고 언급된 사람이 김어준씨 여동생인가 봐요?
    김어준씨 그 뒷말도 있던데," 엄마, 사실 엄마가 나 키운 거 아니잖아, 그냥 방목했지."ㅋㅋㅋ
    그런 어머니가 오늘 김어준 만드는 데 당연히 큰몫 했겠죠.

  • 4. 흑...
    '11.12.29 12:51 PM (112.218.xxx.60)

    눈물이 왈칵 하네요.

    역시 저런 엄마가 계셨기에 김어준 총수같은 아들도 있는 것이지요.

    아드님 참...잘 키우셨네요..

  • 5. 감동~
    '11.12.29 12:54 PM (125.178.xxx.3)

    김어준같은 아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게 아니었군요.
    역시나...

  • 6. 음..
    '11.12.29 12:59 PM (122.153.xxx.50)

    그냥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저 지금 좌절하고있답시고 분위기 잡고 있었거든요.
    글읽으며 그냥 한방에 맞고, 스스로 정신 잡고있네요...제가.

  • 7. 좋은글
    '11.12.29 1:05 PM (59.23.xxx.231)

    잘읽었습니다...

  • 8. 어머니가 어떤 분이신지
    '11.12.29 1:23 PM (1.246.xxx.160)

    정말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키워야 이런 장부의 기상을 갖을수 있을까 하구요.
    그런데 전 어림도 없네요.
    지금은 어머님 건강이 어떠신지 많이 나아지셨는지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 9. 전에
    '11.12.29 1:34 PM (222.110.xxx.248)

    제 선배가 김어준 총수와 중학교 동창이라고...중학교때 니체,톨스토이,각종 사회과학서적, 성경 두루탐독했다는 글도 올리고 했었는데,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어머니는 어떤 분이실까....싶더라구요....

    역시나....네요~

  • 10. ...
    '11.12.29 1:37 PM (122.101.xxx.112)

    눈물나요~~

  • 11. 아...
    '11.12.29 2:00 PM (61.41.xxx.100)

    얼마전 진행했던 라디오에서 여동생이 병으로 일찍 죽었다...라고 했는데 그럼 그 아이인건가요?
    아....대한민국에 이런 사람들도 있군요.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아이 잘 키우겠습니다...

  • 12. dd
    '11.12.29 2:10 PM (211.40.xxx.122)

    모친이 유치원 운영하신걸로 아는데..

  • 13. 좋은글......
    '11.12.29 2:19 PM (121.130.xxx.77)

    고맙습니다~

  • 14.
    '11.12.29 2:33 PM (118.46.xxx.133) - 삭제된댓글

    감동.... ㅠ.ㅠ

  • 15. 에궁
    '11.12.29 2:37 PM (218.233.xxx.23)

    가슴이 뭉클하네요.
    우리 다 같이 쫄지 말아요. 뭐든!

  • 16. 한지
    '11.12.29 2:39 PM (58.102.xxx.20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ㅠㅠㅠ

  • 17. ^^
    '11.12.29 2:55 PM (122.36.xxx.97)

    저두 ㅣ눈물이 흘러요
    총수님 ,총수님어머님 모두사랑해요

  • 18. 아우머시따아
    '11.12.29 4:09 PM (116.122.xxx.209)

    총수님 키우신 어머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19. ..
    '11.12.29 8:12 PM (118.43.xxx.186)

    어준총수님
    저리 멋있고 당당하게 키우셔서
    저희가 호강합니다.

  • 20. 울컥
    '11.12.29 8:36 PM (180.64.xxx.157)

    합니다.
    멋진 어머님 건강하셔요~

  • 21. 찌우맘
    '11.12.29 10:46 PM (175.114.xxx.121)

    지금의 김총수가 괜히 있는게 아니었네요...
    대단한 어머님이 계셨기에 가능했군요...ㅠㅜ

  • 22. ㅠ.ㅠ
    '11.12.29 11:18 PM (124.54.xxx.17)

    어준아, 네가 엄마 닮았구나, 와락~~~

  • 23. ...
    '11.12.30 8:56 AM (119.64.xxx.134)

    두뇌랄까 그런 부분도 아버지 닮아서 다행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 ^;

  • 24. 인터뷰펌)
    '11.12.30 9:00 AM (119.64.xxx.134)

    -아버지가 공무원이셨으면 성향이 조금 보수적일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아들이 나왔나.

    "굉장히 보수적이다. 으하하하핫. 내가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 우연한 조합에 의해서 이렇게 된 거지. 아버지는 굉장히 보수적이신데 음악도 좋아하시고, 시도 쓰시고, 그림도 좋아하시고. 그런 인문학적 소양이 있다. 어머니는 그런 쪽 성향은 전혀 없었는데 대단히 활달하고, 통 크고. 그래서 성격은 어머니를 닮고 머리는 아버지를 닮았는데, 거꾸로 닮았으면 X될 뻔했다.(웃음)"

    -부모님은 딴지일보나 '나꼼수'에 대해 뭐라고 하시나.

    "전혀 얘기해본 적 없다. 어차피 아주 어릴 때부터 뭘 해라, 하지 말아라 이런 이야기를 양친 모두 하지 않았다. 공부를 해야 한다, 인생은 이래야 한다, 그런 말씀 자체를. 결혼한다고 했을 때도 모친의 첫마디가 '누구냐?'가 아니고 '언제?'였다(지금은 '돌싱'이다). 부모님께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 나는 뭘 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나 제한 같은 게 아예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 25. ...
    '11.12.30 9:28 AM (112.158.xxx.111)

    아침부터 울었네요 ㅜㅜ

  • 26. 리틀타이거
    '11.12.30 9:47 AM (112.158.xxx.16)

    제가 아는 누군가와 닮긴 했는데 행동방식은 닮았는데..사고방식은 전혀 다르네요...손이크고 힘도 장사인 아줌마가 있는데 ...많이 속물적이고 한나라 열혈 지지자인 분이 ㅠ..

  • 27. 총수
    '11.12.30 10:27 AM (210.109.xxx.58)

    여장부 어머님의 유전자가 시대와 맞아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인물이 되었지만
    요순시대(살아보지 않아 체감은?)에 태어났다면 혼자 만족하는 한량으로 살았겠지요

    김한길씨 어머니 말씀도 생각나네요
    어떤 때의 시련은 큰 그릇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시련이란 보통의 그릇을 찌그러뜨려 놓기가 일쑤란다."

  • 28. 어무이
    '11.12.30 10:47 AM (122.45.xxx.33)

    처음엔 낄낄 웃다가 ( 내가 가구 옮기는 상황과 비슷해서리)
    나중엔 펑펑 울었네요

    가슴이 아린다는 단어가 생각나요

  • 29. 아...
    '11.12.30 12:47 PM (121.141.xxx.153)

    뭉클하다 못해 울컥하네요..

  • 30. 아메리카노
    '12.3.16 5:10 PM (121.88.xxx.171)

    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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