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내가 본 진정한 엄친아

진정 조회수 : 4,573
작성일 : 2011-11-04 22:50:55
결혼 전 동네에 조그만 수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인 아저씨께서 심한 알콜중독이셨어요.
정신 말짱하실 때 뵈면 괜찮은 분 같았는데, 결정적으로 맨정신이실 때가 일년에 며칠 안 됐다는 거...ㅜ.ㅜ

매일이다시피 말술을 드시니, 그 수퍼는 거의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아주머니께서 잔소리 하시게 되고, 듣기 싫으시니 아저씨 소리 지르시고, 끝내 대판 싸움이 되고마는...

그 수퍼를 가는 건 물론이고, 가게 앞을 지나가는 것만로도 조금 무서웠어요.
제가 술취한 사람들을 무서워하는데, 그 아저씨께서 어디선가 술 드시고 나타나실까봐서요.

그래도 저희 어머니께서 그 아주머니 안 되셨다고 될 수 있으면 대로변 큰 수퍼보다 더 자주 이용하라고 하셔서 종종 이용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노상 근심 한가득 짊어진 어두운 얼굴이셨고요.

그런데, 그렇게 시끄러운 와중에도...
빼꼼히 열린 가게 살림방 사이로 그 집 고등학생 아들이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면역이 된 건지, 귀마개를 하고 있었는지...아무튼 그냥 조용히 책을 보고 있었지요.

가끔은 그 아들 혼자 수퍼를 지키고 있을 때도 있었는데...
인물도 좋은데다 아주 선한 분위기가 뚝뚝 묻어 났습니다.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맺힌 구석 하나 없어 보이는 모습이 마치 진흙 속 진주 같았지요.

집안 분위기가 그러면 사춘기 아들이 큰소리 한 번 낼만도 한데...
싸움이 시작되면 조용히 말리다 그냥 포기하고 들어가 또 공부하고 그랬다고 합니다.

결국 s대 법대에 진학했더군요.
과외는 커녕 그렇게 수퍼 살림방에서 혼자 공부해서 갔다고 들었어요.

그 이후로 그 아저씨 거의 술 안 드셨습니다.
아마 아저씨 자신도 느낀 바 많으셨던 거겠지요.
이후 친정이 그 동네에서 이사를 나오셔서 바람결에 사시합격했다는 소식까지만 전해 들었습니다.

대문에 걸린 잘 사는 집 아이들...이야기를 읽고 나니...왠지 그냥 소개 한 번 하고 싶은 일화였습니다.

그 청년 어디선가 제 몫하며 건강하게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IP : 58.76.xxx.200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쟈크라깡
    '11.11.4 11:01 PM (121.129.xxx.157)

    밥 안먹어도 배부르고
    자다가도 일어나 웃겠어요.

    이젠 돈이고 뭐고 제일 부러운게
    건강과 자식 잘 키운사람입니다.(꼭 좋은대 아니더라도 반듯하게 잘 키운)

    열심히 노력합니다.

  • 2. 엄친아
    '11.11.4 11:39 PM (211.207.xxx.10)

    도 엄친아지만, 법대합격이후 아저씨 술 끊으셨다는 게 정말 반전이네요.
    정말 사람 잘 안 변한다는게 제 생각인데, '중독'의 진짜 원인은
    나약한의지뿐 아니라, 희망의 부재에 있나 봐요.

    박경림씨 아버지도 딸 연예인되고 나서 술 끊으셨다는데, 도움은 못 줬으니,
    딸에게 적어도 피해는 안 주시겠다고.....순환의 고리를 끊으신 분들 정말 용기 있으시네요.
    슈퍼에서 묵묵히 공부하던 엄친아도 대견하구요.

  • 3. 아이들이
    '11.11.5 12:04 AM (124.50.xxx.136)

    정작 자신들보다 낫다고 생각이 들면
    해준게 없는데도 아들이 남들이 엄청 부러워하는 일을하면
    정신 차립니다.
    우리 아버지가 좀 그런편이셨어요.
    술을 좋아했는데,
    우리 남매들이 공부 잘하고 학교에서 상장 따박따박 타서 조용히 방 한귀퉁이에 놓고
    (실은 자랑할줄도 모르고 가방 정리하다 꺼내놓고 급하게 학교 가느라)
    다녔는데, 아버지가 엄청 자랑스러워하고 고마워 하셨다고 엄마가 나중에 그러셨어요.

    자식이 그렇게 했는데 습관적으로 술 마시는거 끊지 못하는거
    사춘기지만, 조금 이해는 했습니다.그래도 거칠게 싸움은 안하셨고
    술만 좋아하셨는데,오빠가 명문대 가니 술 줄이시더군요.
    명절날만 마셨어요.말년에 엄청 자랑스러워 하고 자식들한테 못해준거 많이 미안해 하시다
    7년전에 하늘나라로 가셨는데, 우리 남매가 고시합격은 안했지만,(전공은 다름)
    늘 고마워하셨어요.

  • 4. 예전엔
    '11.11.5 10:47 PM (121.134.xxx.197)

    찢어지게 가난하고,,
    부모가 형편없는(행동거지가) 집에서도,,
    자식들이
    열심히 해서 성공하는 경우가
    꽤 많았는데,,

    요즘은 참 드문 것 같아요.

    예전처럼,
    혼자 공부 열심히 해서,,
    시험 하나 잘 쳐서 판,검사 되고 외교관 되고,,의사 되고,,그런 게 더 나았는데,,ㅠㅠ
    (요즘은 갖은 스펙이 있어야 되는 세상이니..)

  • 5. oo
    '24.9.16 7:57 PM (118.220.xxx.220)

    2024년에 우연히 이 글을 보네요
    그 아들 의젓한 법관이나 변호사가 되었겠어요
    너무 대견하네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5691 지방분해주사 (급질) 5 다이어트주사.. 2011/11/04 2,864
35690 영어 리스닝 조언좀 부탁드립니다 6 영어 2011/11/04 2,518
35689 이대 인문과학부냐 외대 영교과냐 그것이 문제로다 28 살다보니 .. 2011/11/04 6,700
35688 좀 있으면,,,위탄, 슈스케 덕분에 음악에 빠지겠군요,,, 베리떼 2011/11/04 1,705
35687 펌]세계11위 경제대국 멕시코 - FTA 협약이후 저주받은 서민.. 12 녹차맛~ 2011/11/04 2,342
35686 중학생여자아이 미국으로 보딩스쿨보내면,,, 26 미국 2011/11/04 6,225
35685 애정만만세 질문요~ 3 띄엄띄엄봐요.. 2011/11/04 2,259
35684 코스트코 양평점에 키플링 데페아 있나요? 1 사야돼 2011/11/04 2,221
35683 이게 가능한지 함 봐주세요 3 열무 2011/11/04 1,648
35682 마늘까기 5 ,,, 2011/11/04 2,164
35681 성읍민속마을. 9 ^^ 2011/11/04 2,638
35680 도대체 집에서 예배는 왜 하는거예요? 27 .... 2011/11/04 4,524
35679 명품쇼핑백을 파는건 무슨 심리일까요? 16 어이없어 2011/11/04 4,136
35678 저는 인터넷은 젊은(?)사람들의 공간인 줄만 알았어요. 6 정말놀랐어요.. 2011/11/04 3,025
35677 FTA 국민투표로 몰아 졌으면 좋겠네요. 17 승산있네요 2011/11/04 2,189
35676 가습기 살균제 성분 아시나요? 3 pianop.. 2011/11/04 3,101
35675 11월 4일자 민언련 주요 일간지 일일 모니터 브리핑 세우실 2011/11/04 1,376
35674 몸이 허약한 아이 뭘 먹여서 효과보셨는지요 4 초등엄마 2011/11/04 2,197
35673 방사능 아스팔트’ 알고도…정부, 9개월째 방치했다 2 밝은태양 2011/11/04 2,394
35672 李대통령,,, "`그리스 발언' 내가 총대 메" 9 베리떼 2011/11/04 2,561
35671 담임샘..뭘 드리면 좋을까요? 6 저기 2011/11/04 2,864
35670 정봉주 17대 국회의원, "나꼼수 최대의 수혜자는 나" 11 반지 2011/11/04 4,010
35669 시인이 될려구요. 저의 네번째 작품입니다. ㅋ 23 시인지망생 2011/11/04 2,480
35668 도와주세요...매일저녁 모기가 나타나요 ㅜㅜ 12 모기 지겨워.. 2011/11/04 4,147
35667 임신중인데 자라꿈 꾸었어요.. 12 꿈해몽 2011/11/04 8,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