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피의자 조서 단독입수] 말리지 못한 죄? 한 명은 알쏭달쏭
치열한 법정공방전으로 확전되고 있는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최근 < 일요신문 > 이 단독 입수한 본 사건에 대한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에 따르면 피의자 중 한 명인 배 아무개 씨(25)의 '무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언과 증거들이 상당수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는 피의자 3명 모두를 성추행범으로 경찰에 고소한 피해자 윤 아무개 씨(24)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대목이어서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사건은 윤 씨가 같은 대학 동기 남학생 3명과 경기도 가평용추계곡의 펜션으로 여행을 갔다 이들 남학생들로부터 집단 성추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경찰조사에서 피의자들이 혐의를 모두 인정해 쉽게 결론날 것 같던 이 사건은 배 씨가 혐의를 부인하면서진실게임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고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그날 저녁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피의자 배 씨의 성추행 가담 여부, 그리고 배 씨의 무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은 무엇인지 등이다.
최근 < 일요신문 > 이 입수한 문건에는 논란이 되고 있는 위 세 가지 부분에 대한 진실을 밝혀줄 사진과 녹취록 자료, 사건에 대한 피해자와 피의자들의 진술 기록이 상세히 기술돼 있다.
먼저 그날 용추계곡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피해자와 피의자들의 진술 기록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해 봤다. 지난 5월 21일 경기도 가평의 S 펜션. 이날 최초 술자리는 오후 6시 30분께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시작됐다. 윤 씨는 검찰 진술에서 "밖에서 와인 2~3병을 마시고 이어서 오후 9시경 자리를 옮겨 방안에서 남은 술을 마셨다"고 진술했다.
방으로 들어온 네 사람은 남은 와인과 소주를 마저 마셨다. 이후 피의자들은 TV를 시청했고, 윤 씨는 후배에게 '카카오톡'으로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그 뒤 네 사람은 오후 11시까지 서로 이야기를 나눴고, 그 이후의 상황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는 윤 씨가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술에 취해 방으로 들어간 윤 씨를 피의자들이 따라 들어가 집단 성추행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윤 씨도 진술했듯이 이들은 식사 후 함께 방으로 이동해 술자리를 가졌고, 이후 같이 어울리다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 조서에 따르면 오후 11시 30분경 윤 씨는 피의자 중 한 명인 한 아무개 씨의 어깨에 기대다 한 씨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윤 씨가 한 씨에게 기대는 모습을 본 또 다른 피의자 박 아무개 씨와 배 씨는 밖으로 나왔다. 한 씨는 둘만 방에 남은 상황에서 윤 씨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이내 가슴을 만지고 싶은 충동에 그녀의 윗옷과 브래지어를 올리고 약 5분간 윤 씨의 가슴을 추행했다. 그러나 술이 취한 윤 씨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잠시 뒤 배 씨와 함께 차 안에서 음악을 듣던 박 씨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박 씨는 방안의 상황을 보고 놀랐으나 이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약 30초 동안 한 씨와 함께 윤 씨의 가슴을 추행했다. 그 다음 박 씨는 윤 씨의 바지 속으로 손을 넣어 추행했다. 박 씨가 들어온 것을 모르고 있던 한 씨는 박 씨가 자신과 함께 윤 씨를 추행하고 있는 것을 알고 당황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밖으로 나갔던 한 씨와 배 씨가 다시 방안으로 들어왔다. 한 씨는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고, 배 씨는 윤 씨의 옆에 앉았다. 이 당시에도 박 씨는 윤 씨의 가슴을 계속 추행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배 씨가 "이래도 되는 거냐"며 윤 씨의 옷을 내려주려 했으나 못했다고 배 씨는 검찰에서 진술했다. 당초 경찰조사에서 윤 씨의 옷을 내려주다 배 씨의 손이 윤 씨의 가슴을 스쳤다고 한 부분에 대해 배 씨는 "경찰의 강압에 의한 진술이었다"고 검찰에서 번복했다. 배 씨의 변호인단에 따르면 경찰조사 과정에서 경찰이 "똑바로 말해라. 시인하면 훈방 조치해 주겠다"고 해서 위와 같이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1차 추행에서 배 씨의 추행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박 씨와 한 씨의 증언도 있었다. 박 씨는 검찰에서 "배 씨의 추행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고, 옆에 누군가 와 앉길래 보니까 배 씨였다. 그런데 배 씨가 자신을 말리지 않길래 배 씨도 옆에서 추행하고 있는 줄 짐작했다"고 진술했다. 진술 내용 어디에도 박 씨가 배 씨의 추행 장면을 목격했다는 말은 없었다. 더군다나 경찰조사에서 "배 씨가 윤 씨를 추행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던 한 씨는 "경찰조사 때 경찰관이 배 씨도 만진 것을 보았다는 취지로 얘기하지 않으면 유치장에 쳐 넣겠다고 해 강압에 의해 진술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여기까지가 1차 성추행이 벌어진 상황이다. 그리고 새벽 3시 30분경 2차 성추행이 발생했다. 윤 씨는 "잠을 자던 중 누군가의 손이 들어와 잠을 깼는데 제 오른쪽에서 자고 있던 박 씨가 제 가슴을 만지는 등 추행을 했다"고 진술했다. 이와 동시에 윤 씨는 배 씨의 성추행 의혹도 제기했다. 윤 씨는 "왼쪽에 자고 있던 배 씨도 두 차례에 걸쳐 저를 추행했다"며 "배 씨가 제 다리 위에 자신의 다리를 올려놔 배 씨의 살결이 느껴져서 오싹했다"고 진술했다.
윤 씨는 이날 추리닝 밑단이 젖는 바람에 잠들기 전 이불 속에서 바지를 벗고 속옷만 입은 채 잠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의 다리에 닿은 배 씨의 살결을 느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배 씨는 그날 청바지를 입고 잤다. 때문에 배 씨의 살결을 느꼈다는 윤 씨의 진술은 신빙성이 의심됐다. 결국 윤 씨는 법정 증인 심문에서 "검찰에서 계속 추궁해 할 말이 없어서 그런 대답을 했다"고 말해 스스로 자신의 진술을 부정했다.
성추행 다음날인 5월 22일 네 사람은 서울로 돌아왔고, 윤 씨는 23일께 친구 L 씨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이후 윤 씨는 L 씨의 도움으로 양성평등센터에 상담을 받은 뒤 사건 발생 3일 뒤인 지난 5월 25일 배 씨 외 2명을 성폭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조금 의아한 사실은 윤 씨가 피의자들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는 점이다. 성폭행과 성추행은 엄연히 다름에도 그녀는 고소장에 '강간을 당하여'라며 피의자들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윤 씨는 성폭행 사실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들을 성폭행으로 고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증거로 지난 5월 23일 윤 씨는 후배 S 씨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에서 "성폭행까지는 아닌데"라며 성폭행 사실이 없었음을 분명하게 언급했다.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실시한 윤 씨의 신체와 그녀가 그날 착용한 속옷 및 의류에 대한 감정결과에서도 피의자들의 정액이나 콘돔성분 등 성관계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브래지어에서 한 씨의 타액이 검출됐다.
또 윤 씨는 5월 23일 친구 L 씨와의 카카오톡 대화에서 "배 씨는 새벽에 카메라 찍고 이런 거 모르니깐. 근데 배 씨가 상황을 다 몰라서. 새벽에 있던 것들 박 씨만 한 거잖아"라고 말했다. 이는 윤 씨 스스로 배 씨의 무혐의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또 윤 씨는 5월 23일 친구 L 씨와 대화를 나눈 뒤 성추행에 대한 증거를 기록하기 위해 인근 대학교에서 박 씨와 만나 대화를 녹취했다. 그런데 이 녹취록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윤 씨는 박 씨에게 "배 씨도 다 알았던 거지?"라고 물었다. 이에 박 씨는 "그건 잘 모르겠어. 아무 말 안했어"라고 대답했다. 윤 씨가 "너랑 한 씨가 그런 거 배 씨는 몰랐어?"라고 박 씨에게 묻자 박 씨는 "모르고, 나중에 배 씨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라고 답했다.
위의 대화 내용은 1차 성추행에 대한 추궁이었고, 새벽에 발생한 2차 성추행에 대한 추궁도 이어졌다. 윤 씨는 박 씨에게 "난 3시 반 이후가 더 그렇더라. 너 혼자 그랬을 때"라고 말했다. 여기서도 윤 씨는 배 씨의 성추행 사실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이 드러났다. 또 박 씨와 한 씨의 검찰 진술에서도 배 씨의 범죄 사실이 없음이 드러났다. 한 씨는 검찰 진술에서 "박 씨와 배 씨의 성추행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했고, 박 씨는 "만일 배 씨가 옆에 깨어 있는 사실을 알았다면 윤 씨가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낸 상태로 윤 씨를 추행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당시 배 씨가 윤 씨에게 다리를 올려놓고 추행을 저질렀다면 박 씨가 이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린 주인공의외로운 법정싸움을 그린 영화 <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 에서는 '10명의 죄인을 놓친다고 해도 1명의 죄 없는 사람을 벌하지 말라'는 문구가 나온다. 고려대학교는 이번 사건과 관련 윤 씨를 성추행한 의대생 3명에 대해 최고수위의 징계인 출교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아직 밝혀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 무엇보다 배 씨가 성추행에 가담하지 않았고 단지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도매금으로 넘어가선 안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보다 철저한 진실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
'위험한 여행' 소문과 진실
윤 씨가 여행 제안 '남3 여1'도 알았다
지난 9월 2일 윤 씨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 전화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은 얘기를 했다. 진행자가 '피해자도 이러한 사건을 초래한 책임이 있다는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그는 "특히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건 왜 여자 혼자 남자 셋이 가는 데 따라갔냐. 그걸 초래한 것 아니냐 이러는데 저는 처음에는 저 말고 다른 여자애가 같이 가는 줄 알았다"고 대답했다.
피의자들의 제안에 따라 여행을 갔다는 것이 윤 씨의 주장이다. 하지만 문건에 수록된 윤 씨가 배 씨에게 전송한 문자 메시지를 캡처한 자료를 보면 윤 씨가 먼저 여행을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윤 씨는 '난 안산안과ㅠ! 담주화욜애들이랑 놀러가자♥'라는 메시지를 5월 2일 오후 2시 12분에 배 씨에게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여학생이 같이 가는 것으로 알았다'는 윤 씨의 발언에도 의구심이 남는다. 취재 결과 배 씨는 윤 씨에게 "차에 한 자리가 남는데 B 양과 같이 갈까"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윤 씨의 답장은 "한 씨 or not"이었다. 이에 따라 언급된 B 양은 같이 가지 않았고 대신 한 씨가 그날 여행에 합류하게 됐다. 또한 윤 씨는 배 씨에게 "B 양은 안부른 거지ㅋㅋ"라는 문자까지 보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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