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말
- 아침
요즘 자주 먹는 토마토 샐러드와 명이와 샐러리 어린 잎 .
토요일 느지막한 아점이다 .
명이와 샐러리는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서 일찌감치 싹을 틔웠다 .
- 점심
텃밭에 감자를 심고 돌아와 밥 한 솥을 앉혔다 . 보통 일주일치 밥이다 .
다 말았다 . 김에 단무지 계란 당근 시금치 등을 넣고 말았다 . 잘 ~
그리고 요만큼 남겼다 .
부른 배를 움켜잡고 늘어지게 낮잠 아니 잘 수 없었던 토요일 .
- 저녁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 아침을 건너 뛴 일요일 이른 저녁이다 .
전날 감자 심으며 냉이를 캤다 . 냉이 한주먹과 매운 고추 올려 부침개를 했다 .
내친김에 도토리전도 했다 .
#2
- 퇴근이 빨랐던 날
현관을 들어서며 맞아주는 H 씨에게 “ 저녁은 ?” 하고 물었다 .
“00 씨 좋아하는 재료 다 준비해 놨어 ” 라며 씻어 놓은 채소와 물에 담가 놓은 미역줄기를 보여준다 .
사실 딱히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아닌 재료들이지만 손 댈 것 없기에
미역줄기는 볶았고 채소는 그냥 내 놓으며 달래만 따로 무쳤다 .
간장과 참기름 , 들깨가루 살짝 넣고 젓가락으로 뒤적뒤적 .
전날 끓여 먹고 남아 푹 퍼진 어묵 탕엔 파만 송송 썰어 얹고 김치는 통째 냈다 .
밥 먹으며 “ 어때 ?” 라고 묻자 , H 씨 “ 맛있어 ” 라고 영혼 없이 답한다 .
“ 뭐가 어떻게 맛있냐고 ? 구체적으로 ?” 라고 재차 물었더니 ,
H 씨 “ 미역줄기에선 내가 원했던 바다 맛이 나고요 . 달래에선 산 냄새가 나네요 .” 라더라 .
그러나 달래도 미역줄기도 어묵도 채소도 모두 남겼다 . ㅠ . ㅠ
역시 밥상은 그저 ‘ 맛있다 ’ 한 마디에 꾸역꾸역 남김없이 먹어주는 게 최고 칭찬인 것 같다 .
- 몹시 힘들었던 날
이래저래 몸은 지치고 미세먼지 농도만큼이나 마음이 흐렸던 날 . 늦은 퇴근 .
먼저 저녁 먹었다는 H 씨 ‘ 뭐 해줄까 ?’ 묻기에 ‘ 삼겹살 같은 기름진 것 ’ 이라 대답했다 .
참으로 오랜만에 집에서 고기 구웠다 . 팬에 고기 올리고 뚜껑까지 닫아 돼지기름에 튀기듯 구웠다 .
다 익은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정육점에서 얻어온 파 채를 넣고 여열에 뒤적이고 후추를 뿌려 접시에 담았다 .
돼지고기와 아주 잘 어울리는 음료 ? 가 몹시 그리웠으나 참았다 . 지친 심신 탓에 .
- 애매하게 퇴근한 날
9 시 넘어 집에 갔더니 “ 애매한 시간에 왔네 , 술도 안마시고 저녁 전이면 …… .” 라고 한다 .
먹다 남은 김치 넣고 부침개에 맥주 한 캔 , 이것도 애매한 저녁으로 괜찮은 듯하다 .
H 씨 준비한 부침개인데 , 살짝 기대하지 않은 버터 맛이 나더니 반죽에 버터를 넣었다더라 .
참 심심하게 산다 . 세상사 복잡하고 어지럽다는데 ,
H 씨와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엇갈리고 마주치며 이렇게 지낸다 . 출근하고 퇴근하고 먹고 치우며 .
#3
K 에게
요즘 널 보면 놀라곤 한다 . 오랜만에 봐서 이기도 하겠지만 , 네가 쓰는 말들이 바뀌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고체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 더 이상 어린아이도 학생도 아닌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 그만큼 너의 마음 씀과 행동이 성장한다는 것이겠지 .
‘ 네 삶은 온전히 네가 결정해야 한다 .’ 는 걸 잊지 말거라 . 아울러 너의 생각과 행위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에 , 그만큼 신중하고 배려 깊어야 하며 , 그들의 발언과 결정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마라 . 외따로 ,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에 크든 작든 집단에 속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우린 살아간다 . 이속에서 ‘ 자기 결정 ’ 과 상호 영향으로 인한 ‘ 통제 ’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 요즘 시국에 비추어 ‘ 자유와 민주 ’ 라고 정리할 수 있을 거다 .
네 삶을 온전히 결정하는 결정권이 ‘ 자유 ’ 라면 그 결정에 직 , 간접 영향을 받는 이들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 민주 ’ 라고 할 수 있다 . ‘ 민주 ’ 는 나 이외의 사람들의 발언권과 결정을 존중하는 거다 . 사회적으로는 법과 도덕 같은 ‘ 통제 ’ 형태로 나타난다 .
오늘 구속된 어떤 이의 경우가 , 자기 결정이라는 자유는 배타적으로 키운 반면 다른 사람들의 발언권과 요구는 무시한 삶이다 . 물론 삶에서 자기 결정이라는 자유는 정치상황에 빗대 간단히 정리할 건 아니다 . 민주 또한 사적인 영역과 공적 영역이 다르기에 마찬가지다 .
자기결정이라는 자유는 마주하는 삶의 문제들에 답을 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 질문을 만들 수 있을 때 진정한 빛이 난다 . K 야 ,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 내가 어떻게 살지 ? 스스로 묻고 답할 수 있을 때 ’ 더 많은 통제력이 확보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
오늘은 여기까지 . 좀 더 고민하고 얘기해보자꾸나 . 삶에서 자기 결정과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는 문제 , 단순한 가치중립이나 균형으로 답할 수도 없고 쉽지 않다 . 자신의 삶에 질문을 던져보는 걸로 시작해보았으면 한다 .
K 야 오늘도 행복하렴 !
#4
아침 뉴스를 보다가 ‘ 버럭 ’ 했다 . ‘ 박근혜가 수번으로만 불린다 .’ 는 대목에서 ‘ 사람이 구속됐다고 번호로 불린다는 게 옳은 일이야 ?’ ‘ 수인번호로 불리는 근거가 뭔데 ? 그런 법이 있을 리 없고 기껏 지들 내부세칙에나 있으려나 .’ 라며 H 씨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 똑같이 수번으로 불린다는 게 뉴스거리가 아니고 누구든 이름 놔두고 수번으로만 불릴 까닭 없다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
수감자 얘기가 나온 김에 생각나는 것 하나 더
춘천교도소에 가면 이런 게 서 있다 .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모를 저 거대한 돌덩어리는 대체 뭔가 ?
서울구치소엔 없으려나 ? 또 다른 곳엔 . 설치근거는 뭘까 ? 저기가 국유지일 텐데 직원일동이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