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결실의 계절로 알려져 있지만 한편으론 익숙했던 것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서려있는 절기節氣이기도 하지요.
이미 시골의 들녘에서는 ‘가을걷이’가 한창일 테고, 산하는 하루가 다르게 단풍진
풍경화로 변해가고 있을 것입니다. 아침저녁의 기후에 예민해지다보니
<가을>이 마치 “서걱서걱 ― ” 발걸음으로 스산하게 다가오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네요.
가을에는,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이나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결에서도 ‘시정詩情’이
한껏 감성적인 무성無聲의 말을 걸어오기에, 이때 즈음이면 누구나가 시적 감흥
에 젖어들어 잠시 시절時節을 음미하게 되는 한 철입니다.
마침 가을스러운 분위기와 그 이미지가 배어 있는 클래식 명곡 5곡을 준비했는데,
애수의 감정(Melancholy)이 담겨 있는 음악의 선율이 가을의 영혼을 촉촉이
채워줄 것입니다.
계절의 절기가, 자연에서부터 무성했던 게 ‘생멸生滅’의 과정을 거치고 철새들의
이동이 있어서인지 우선 가을하면, 이별을 연상하게 되는 감정이입이 있지요.
‘만나게 된 인연은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지게 되는’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불교적 표현이 잘 어울리는, 그런 변환의 시간에 어느덧 우리는 당도하게 된
것 입니다.
자신이 계획했던 일과 살아온 삶의 궤적을 회상하며, 세월의 무상함을 탄식하게
되는데요, 그렇지만 ‘떠나보내는 게’ 있어야 새로 맞이하게 될 그 무엇이 있을
수 있는 건 순전히 자연의 순환이고, 또 다른 다행스러운 한 ‘희망’ 이기도 할 것
입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본래 “빈손, 맨몸”에서 출발했기에, 크게 잃을 것도 없겠지만
혹시 시간을 잃어버렸다면, 잃어버린 시간의 양만큼 자신의 내적 체득을
감사드립시다! 삶은 결국 시간을 낭비하면서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긴 여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니까요.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포도주처럼 세월이 가면서 익어 가는
것이다.” (누군가요? 이 아름다운 말을 한 이는.........)
빈센트 반 고흐 <라 크로의 추수> 1888년 작
하늘땅의 사랑으로 만물이 무르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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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地絪縕 萬物化醇(주역 계사전 하편 5장)
1. 사라사테의 찌고이네르바이젠 (Zigeunerweisen: 집시의 노래)
2.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Hungarian Dance) 제5번 & 제1번
3. 쇼팽의 피아노 연습곡(에튀드) ― 이별의 곡
4.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8번 ― 비창 제2악장
5. 생 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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