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가기 전 일본 미술관,박물관을 알 수 있는 여행 서적을 여러 권 구해서 읽었습니다.
한 권이면 족하지 않냐고요? 누가 쓰는가에 따라서 같은 공간이라도 지면의 배당도 다르고
선택한 공간도 달라서 같은 곳에 대한 설명을 여러 권 읽다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하, 이 사람은
이 공간이 이렇게 매력적이었구나, 그런데 저 사람은 이 곳에 대해서 왜 이렇게 박하게 설명하거나 지나치게 후하게 설명한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다르게 반응하게 만들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미리 여행을 즐기는 시간, 제겐 그런 시간자체가
이미 여행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서양 미술관에 대해서는 그 곳이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주를 이룬다고, 그리고 소장품을 기증한 사람이 실업가
마쓰카타 고지로라는 사람인데 그가 유럽 각지를 돌면서 마련한 컬렉션을 전쟁때문에 구입만 하고 못 들고 들어왔는데
패전한 나라라서 그림이 전부 프랑스 정부에 몰수되었다는 것, 도코에 전용 미술관을 세운다는 조건으로 반환 받아서 세운 것이
바로 국립 서양 미술관인데 설계를 맡은 것이 바로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라는 것까지였습니다.
처음 방에 들어섰을 때는 이 곳이 인상파 그림이 주를 이룬다는 미술관 맞아?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콘화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중세 이후의 그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놀랐던 것은 한 개인이 그것도 실업가가 이렇게 다양한 컬렉션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돈이 많아서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아마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청년 시절이 있었을까?
그러나 먹고 살아야 하는 일, 혹은 선대의 일을 물려받아야 하는 사정,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림과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일을 하는
동안 모은 돈으로 원하던 그림을 그릴 수는 없어도 구해서 보는 방향으로 마음을 정하고 작심하고 그림을 만나러 다닌 것일까
그림도 그림이지만 컬렉션 한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처음에는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생각을 못하고 둘이서 조용 조용히 이야기하다가 흥분하면 조금 소리가 올라가기도 하면서
그림을 보았습니다 .마침 금요일 늦은 시간이라서 그런지 관람실 안에 다른 사람의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방도 있어서 훨씬
호젓한 관람시간이었지요. 모르는 것이 있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안내원에게 물어가면서 그림을 마음껏
보는 호사를 누렸는데 혼자서 여럿이서 함께 하던 일본어가 드디어 의미를 캐물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대처가 된다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제가 말을 고르고 고심하면서 물어보고 나면 지혜나무님은 이미 감각으로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
이런 말 아니냐고 물어보는 바람에 역시 감각이 언어에 우선하는 것인가 하고 놀라기도 했던 시간이 생각나네요
모네의 방이라고 명명해도 될 만큼 다양한 모네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방이었습니다.
여행을 함께 한 노다윤, 오늘 수업하러 와서 역시 그림에 관한 책을 보고 싶다고 하더니 모네에 관한 것만 뽑아서 읽더라고요.
한 번에 한 화가씩 읽어보고 싶다고, 미리 읽고 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하기도 하고, 자신이 휴대폰에 찍어온 그림을 보여주면서
화가를 알려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작은 씨앗이 앞으로 그 아이가 미술관과 맺는 인연으로 커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능하면 다양한 이야기와 더불어 화가에 관한 책을 보여주기도 ,제가 좋아하는 화가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답하기도 했습니다.
샐쭉한 표정의 두 소녀가 있는 이 그림은 처음보는 고갱의 작품이었습니다.
이번에 고갱과 세잔의 그림을 마음에 흡족한 작품으로 본 것은 브리지스톤 미술관이었습니다.
같은 화가의 작품이라도 무엇과 만나는가에 따라서 느낌의 강도가 훨씬 다른 법이니까요.
이번 여행에서 유난히 자주 만난 화가, 드니인데요
일본에 왜 이렇게 이 화가의 그림이 많은 것일까 고개 갸웃해질 정도로 자주 만나서 신기했습니다.
금요일 나들이 할 때 미술관을 가끔 가곤 했었는데 오후 수업이 생기는 바람에 미술관에 갈 시간을 내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랫만에 보는 그림으로 정신이 집중을 해서인지 몸이 갑자기 가벼운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제까지 보던 그림들과는 확 다른 붓 터치가 상당히 강렬하지요?
미술관을 다 돌고 나니 마치 하룻밤에 미술사를 한 번 현장에서 경험하는 것같은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답니다.
그림을 혼자 보는 것은 보는 것대로 둘이서 보면 그것대로 재미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시선으로 보고 무엇에 더 끌리는가를 비교해보기도
하고, 공간을 어떻게 느끼는 가에 대해서도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번 서양 미술관에 함께 간 지혜나무님은 아무래도 아르 누보
라파엘 전파, 그리고 중세 미술에 흥미를 보여서 그녀의 전공, 그리고 취향에 대해서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 날이기도 했어요.
이번에 거의 예상도 못했던 작품을 만나서 마음이 설렜던 작품중의 하나가 바로 이 그림입니다. 화가의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워서
아직도 제대로 모르지만 언제 어디서 도판으로 만났는지는 몰라도 제 기억속에 상당히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작품이었거든요.
마치 오랫동안 그리워했지만 만날 가능성은 예상도 못하던 사람과 우연히 만난 것처럼 반가워 하던 제가 생각나서 갑자기
웃음이 나오네요.
아직도 헛갈리는 이름 뷔야르 혹은 보나르 둘 중의 한 화가의 작품인데요 색을 보니 보나르일까 어림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 만난 뷔야르도 보나르도 반가웠지요. 제가 오랫만에 보는 그림, 혹은 예상치도 못한 그림에 반응하는 것을 보던
지혜나무님이 마치 친구 만나듯이 좋아하는 모습이 재미있다고 해서 웃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비치는구나 싶어서요.
이렇게 한 작품 한 작품 보다가는 한이 없을 것같네요. 이 작품은 서양에서 활동하던 일본인 화가가 그린 것이라서
일부러 작가 이름까지 따로 찍었지만 흐릿해서 읽기가 어렵네요. 이번 여행에서 아쉬운 부분중의 하나는 갈 곳이 너무 많아서
근대 일본 미술가들의 그림을 볼 수 있는 미술관에 못 가 본 것입니다. 물론 아쉬운 것이 이 곳만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의 미술과
그 곳에서 직접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못한 셈이니까요.
아쉬워 하면서 뒤적이다가 다시 만난 이 이름은 선명하네요.
마치 서양 미술의 종합 선물세트를 받은 것 같은 날, 루오의 작품도 만났습니다.
언젠가 대전에서 열린 루오 특별전에 여럿이서 함께 갔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몇 점 대표작으로만 기억하던 그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만나고 나서는 그 전과는 다른 눈으로 그의 그림을 찾아서 보게 되었거든요. 물론 루오를 특별히 좋아해서 갔다기 보다는
당시 대전에 살던 클레어님하고 만나기도 할겸 여럿이서 함께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한 번 그렇게 한 화가와 제대로
만나고 나니까 다른 곳에서 그의 그림을 보게 되면 반가운 마음에 확 달려들게 되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이랍니다.
그 날 그 자리에서 잊을 수 없게 강렬했던 작품중의 하나입니다 .클라인일까, 클라인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위화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잭슨 폴락이더라고요. 일본인의 정서를 자극하는 폴락이었나? 마치 동양화의 먹을 사용한 느낌이 드는 그림앞을 서성이면서 여러 차례
보게 되었고 휴대폰의 노다윤이 제가 새로 장만한 스마트 폰이 너무 썰렁하다고 느꼈는지 미술관의 그림중에서 좋아하는 그림을
세 장만 골라 보라고 했을때 고른 세 점 중에서 한 장이 바로 이 그림이었지요.
아직도 소개하고 싶은 그림은 한참 남았지만 이렇게 한 장 한 장 다 끄집어내다가는 한도 끝도 없을 것같네요.
그러니 서양 미술관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는 것으로 하고 남은 그림은 가끔씩 생각날 때 꺼내보아야 할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