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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엄마는 말하셨지. 얼른 가져가거라...

| 조회수 : 11,155 | 추천수 : 5
작성일 : 2012-03-08 09:05:07


 

지난 주말에는 언니네 가족이랑 밖에서 식사를 하고
형부가 집에 가서 차 한 잔 하자고 하여 따끈한 차 한 잔 마시며 놀다 왔습니다.
그런데 차 한 잔이 담긴 찻잔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엄마 이야기를 하기도 했네요.

우리 형제들이 사는 집 어딜 가나 엄마의 그릇이 없는 집이 없고,
엄마가 사 준 그릇이 없는 집이 없다는 걸 알아요.

엄마는 흔히들 말하는 옛날 구식분인데도
음식이나 그릇에 아주 관심이 많고 솜씨도 남다르세요.
그런데도 우린 그것이 당연한 건줄 알고 자랐지만
지나고 보니 말하자면 엄마는 원조 그릇녀라고도 말할 수 있을것 같아요.^^

늘 그릇에 관심이 많으셔서 남들이 말하는 좋은 그릇도 좀 있었지만,
어릴적 엄마랑 시장엘 가면 시장통 그릇가게나 길거리 그릇도 그냥 지나치치 못하시고
쭈그리고 앉아 특이하면서도 유용한 걸 몇 개씩 고르시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자,
대부분이 그렇듯이 저도 엄마와 연관된 그릇 스토리 중에서 하나쯤 꺼내어 볼까 합니다.~



이십 몇 년전이던가,
엄마랑 아버지가 자식들이 보내주는 일본여행을 가게 되었지요.
그리고 무사히(?옛날이니까^^) 돌아오시는 날,
우린 모두 다 부모님 집에 모였습니다.

그 때 엄마가 작은 방에 상자 여섯 개가 있으니 가져오라고 하시더군요.
바로 육남매 아들딸들 몫의 그릇 셋트 여섯 상자였습니다.

일본 여행을 가며 자식들 선물을 사다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신겁니다.
그런데 무겁게 일본에서 들고 오기도 힘들고 일본에 돈 많이 쓰기도 싫으시더랍니다.
물론 그릇을 살 생각을 하신거구요.

그래서 당시에는 동네마다  더러 수입품 가게가 있었는데
동네에 엄마가 가끔 구경을 하곤 하던 잘 알고 지내던 가게가 있었지요.
아는 동네가게에 기분좋게 매상도 올려주고,
여행 떠나기 전에 편리하게 여섯 셋트로 여행국의 그릇을 한국에서 미리 사놓고 떠나신겁니다.

엄마는 나중에 틈틈히 전화로 푸른 색감의 공기에 하얀 쌀밥을 담아보라고,
보통보다 큰, 우동그릇만한 국그릇(?)은
곰탕이나 육개장처럼 조금 양을 많이 담는걸로도 좋다고 전해주시기도 했어요.
그릇 생산국는 다르지만 우리 음식을 잘 어울리게 담아 먹을 수도 있다는 걸 말입니다. 


또, 노랗게 조밥을 지어 도토리 묵밥을 담아 먹으면 보기 좋다고 하여
가끔 도토리 묵밥을 만들 때는 이 넓은 대접(?)을 꺼내어 쓰기도 합니다.
도토리묵밥에 조밥의 궁합을 그래서 일찍이 알기도 했네요.

당시 제가 결혼 초반의 딸이어서 왕초보 주부에게 살림 코치를 하실겸 이런 조언들을 하신듯 싶어요.
알고보니 울엄마는 그릇과 음식의 조화도 생각하시던 분이었던것 같습니다.


이 뿐 아니라,
제가 결혼해서 살기 바빠 여유로이 그릇을 바꿔가며 살지 못하는걸 보며 가끔씩 선물하십니다.
한 가지쯤 자랑한다면
어느 해의 결혼기념일에 한국도자기의 상차림 셋트 일체를
어떤 색의 그릇에나 코디가 잘 되는 깨끗한 흰색으로 선물하셔서
질리지 않고 평생을 사용할 수 있는 행복이 제게 있답니다. 

  


 엄마는 늘 몸이  허약하셔서 병원을 자주 다니셨어요.
그런데 돌아가시기 얼마전쯤 그냥 언제나처럼 찾아뵈러 갔더니 꼬마시루를 꺼내어 놓았더군요. 
쬐끄맣고 참 구여운게 이쁘다고 제가 몇 번 말했던 걸 기억하시며
왠일인지... 이 시루를 <얼른 가져가거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면서 봄에 쑥버무리 같은 건 사먹는것 보다
쌀가루 조금 빻아다 놓고 집에서 손쉽게 만들어 먹는게 더 맛있다고 말하셨지요.
사진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쌀 두 되 정도면 가득 차는 아주 작고 앙증맞은 사이즈입니다.

엄마는 평소에 미리 방아간에서 쌀가루를 미리 빻아다 두었다가
제가 친정엘 가면 즉석 간식으로 떡을 쪄서
김이 펄펄 오르는 뜨거운 걸 넓은 접시에 푹 쏟아 주기도 하던 시루였지요..
외할머니의 무시루떡, 호박고지콩설기 등이 우리 아이들의 기억 속에 쏘울푸드처럼 남아있답니다.



 


철없는 딸은 눈치없이 좋아라 하면서 냉큼 가져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영영 아주 먼 길을 떠나셨습니다.
갑자기 ‘얼른 가져가라’는 말이 뒤늦게  두고두고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렇게 봄이 찾아오면 엄마가 계신 그 산의 청정한 쑥을 뜯어옵니다.
머잖아 이 봄에도 쑥쑥 자랐을 쑥을 보따리 가득 담아올 생각과 함께
오늘... 울엄마가 너무나 미치도록 그립습니다.







물처럼 (ulee94)

그대, 오늘을 눈부신 하루로 만들어라. 오늘의 빛 때문에 눈멀어라 ~~~*구본형

짧은 댓글일수록 예의를 갖춰 신중하게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꿀물여사
    '12.3.8 11:10 AM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어머니.
    젊었을 때 너무 고생하신 팔순이 다되가는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어머니, 엄마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따뜻해지죠.
    어머니를 추억할 수 있는게 그릇 뿐이겠습니까? 만 그릇과 함께 그속에
    담았던 음식이며 사랑을 다 같이 추억할 수 있는 님이
    부럽습니다.

  • 물처럼
    '12.3.8 12:47 PM

    꿀물여사님,

    내 마음 속의 그릇 이야기가 주제로 올랐을 때
    당연히 엄마이야기가 많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저 역시도 당연히 특별하지 않게
    그릇사랑이 유난하셨던 엄마의 그릇이야기가 우선이 되더군요.

    그릇은
    밥을 먹어도 차를 마셔도 나물을 담아도...
    그릇에 담긴 배경을 늘 떠오르게 하는 마술이 있는 것 같아요.
    님이 팔순이 다 되어가는 어머님이 생각나는 것처럼...^^
    고맙습니다.~

  • 2. 싸리꽃
    '12.3.8 12:24 PM

    에이....뭐예요.
    일본 여행을 가시면서 한국에서 일본그릇을 사 놓으셨대서 깔깔 웃으면서
    읽고 있었는데....어머니가 벌써 다른 곳에 가셨네요.

    사진으로 봐서는 일본그릇인데도 요즘 유행하는 북유럽 그릇처럼 보여요 ㅎㅎ

    어머니께서 좀 더 이 세상에 머물러 계셨다면 물처럼님께 푸드 코디네이터로 가는 길을
    알려 주셨을 거 같아요.

    꼬마시루는 저도 받은 게 있는데....어디다 처박아 뒀는지 찾아봐야 겠어요.

  • 물처럼
    '12.3.8 12:49 PM

    싸리꽃님,
    저희도 처음에는 재미있어하면서 막 웃었던 기억이 있어요.
    일본 여행을 가시면서 한국에서 일본그릇을 미리 사 놓으시다니~ㅎㅎ

    아마 그래서 그런 스토리가 생각나서
    이번에 이 그릇이 떠오른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님의 말씀처럼 엄마가 살아계셔서
    제 인생의 길을 인도해 주지 않으셔도 좋으니,
    누워만 계셔도 좋으니,
    이 세상에 살아만 계셨으면 좋겠습니다.ㅠㅠ
    고맙습니다.~

  • 3. 가을여인
    '12.3.9 10:48 AM

    그릇 참 예쁘네요. 국적과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물처럼님 글도 잘 쓰시고... 잘 읽었습니다.

  • 물처럼
    '12.3.9 3:14 PM

    이쁘고 아름다운 것은 늘 한결 같아야 한다는 생각인데
    사연이 있는 그릇이다 보니
    고슴도치처럼 저도 늘 이쁘게만 보이기도 해요.^^
    그렇게 바라보는 가을여인님의 시선 또한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맙습니다.

  • 4. 윤쨩네
    '12.3.9 12:23 PM

    그리워하시는 그 맘이 전해져서 저도 찡해요.
    친정엄마한테 문자 넣어야겠어요.
    행복하셔요^^

  • 물처럼
    '12.3.9 3:18 PM

    엄마가 떠나신 즈음이 지나고
    그 후 한동안은 살짝 시간이 지나가는 것 같더니
    나이 더 먹고 이렇게 한참지났는데
    어린아이처럼 더 많이 그리워 집니다.
    문자 넣을 엄마가 계신 윤쨩님이 부럽습니다.
    나도 엄마가 계셨으면...
    고맙습니다.

  • 5. 해밀
    '12.3.16 1:21 AM

    이렇게 늦게, 이렇게 좋은 글을 읽다니... 감동입니다.
    많은 자식들에게 골고루 사랑을 쏟는 물처럼님의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일본 그릇 별로 안좋아했는데 저 그릇은 정말 멋집니다.
    어머니가 감각이 있고 멋을 아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같은 여자로서 멋진 여성이라는 느낌... 그런 분이 오래 사셨으면 좋았을거라는 아쉬움도 함께 했구요.
    딸이 왔을 때, 즉석에서 떡을 해주시는 어머니가 제 어머니가 아니지만 너무 좋습니다.
    전 여섯살때 어머니가 하늘로 가셨지만, 님의 어머니를 통해 잠시 모정을 느껴봅니다.
    한편의 좋은 수필 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물처럼
    '12.3.16 8:01 PM

    해밀님,
    세월이 흐르는 것이
    누군가가 기억에서 흐릿해 진다는 것이
    꼭 서글프지만은 않다고 생각이 드는 저녁입니다.

    이렇게 남아있는 밥그릇이 있고, 꼬마시루가 있고
    또 간절한 그리움이 엄마와 더욱 밀착하게 하는 힘이 있네요.
    그나마...

    그리고 이 저녁,
    문득 82에 들러서 며칠씩이나 지난 글을 읽고
    마음을 보여주신 해밀님의 고마운 댓글을 읽을 수 있으니
    참 좋으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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