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예전에 가족과 함께 스리랑카 여행기를 올렸던 구름빵입니다 .
지금은 한국에 돌아와 다시 안존하고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
배낭을 매고 , 땀을 뻘뻘흘리며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던 그 뜨거웠던 여행의 기억도
이제는 기억 저편으로 아스라히 멀어져가고 있지만 ,
분명 우리 가족에겐 보이지 않게 마음의 근육이 단련되었나봅니다 .
예전과 똑 같은 일상이건만 그것을 대하는 “ 태도 ” 는 분명 달라져있답니다 .
[쿠알라룸프 lcct 공항에서 일곱살이 세살아이 업어주는 모습]
스리랑카 , 캔디에서 제가 82 에 접속해서 여행기를 올렸던 그 시간에 ,
그러니까 남편에게 일곱살 , 세살 딸아이를 맡기고 저혼자 나와서 pc 방에 있던 그 시간에
아빠는 아이들을 데리고 캔디호수를 산책하다가
둘째아이가 그만 호수에 빠지는 “ 사고 ” 가 났답니다 .
다행히 바로 아빠가 뛰어들어 아이를 건졌고 ,
아이는 다친곳 없이 다만 조금 놀래서 진정시키면 되었지만
남편에게도 제게도 엄청난 충격이 되었답니다 .
[아이가 호수에 빠졌던 그 주변에서, 망고를 팔던 할아버지. 이틀뒤 다시 갔더니 너무나 반가워하며 아이를 안아주셨지요]
석달열흘을 꼬박 , 온전히 가족과 함께 있으면서
손이 발이되도록 아이들을 챙길때는 아무일이 없다가
하필이면 , 꼭 그렇게 엄마의 의무를 방기했던 단지 두시간동안 ,
그렇게 엄청난 일이 생겨버리니 , 저또한 다시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
일주일에 하나씩은 82 에 사는 이야기 , 먹는이야기 올리며 나도 “ 소통 ” 하고 싶었지만
그날 이후로 , 다시 정신 바짝차리고 온전히 ‘ 엄마 ’ 로 포맷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호수에 빠졌던 아이는 , 정말 다행히 무사했지만
남편이 배낭을 맨채 호수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 배낭에 들어있던 카메라가 고장이 나버려서
스리랑카 캔디에서 다시 디카를 구입해야 했답니다 .
저희가 들고 있던게 가벼운 똑딱이 캐논 카메라였는데 ,
그것보다 훨씬 후퇴한 버전의 카메라를 아주 비싼 가격에 사야 했어요 .
하지만
,
하늘이 도와서 아이가 무사했다는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
그렇게 스리랑카에서 20 여일을 보내고 미얀마로 날아갔습니다 .
스리랑카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 쿠알라룸프로 와서 , 저녁에 미얀마 양곤행 비행기를 타는 것이 저희 계획이었습니다 .
하지만 …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어요 .
남편과 아이들은 쿠알라룸프 LCCT 공항 라운지에서 쉬고 있고 ,
저혼자 수속하러 창구로 갔는데 ,
당연히 우리 가족의 여권과 항공권 컨펌메일을 안내데스크에 내밀었는데 ,
담당자는 제 여권을 살피더니 그러는겁니다 .
“ 미얀마 비자 어딨어 ?”
“ 응 , 도착해서 도착비자 받으려고 해 ”
“ 무슨소리야 . 미얀마 도착비자 없어진지가 언젠데 . 너 비자 없어서 미얀마 못가 ”
“ 엥 ???”
10 초간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순간정지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
담당자는 제 얼굴을 또렷이 보며 말합니다 . “ 다음사람 ! next!”
머리에 새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짹짹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짐을 빼서 헬프데스크로 갔고 , 일단 항공권은 보류상태로 두고
비자를 받아오면 , 벌칙금을 내고 , 다시 항공권을 살릴수 있다는 “ 희망적 ” 인 메시지를 들고
라운지에 있던 가족에게 돌아갔습니다 .
저는 그남자보다는 “ 희망적 ” 인 메시지를 남편에게 전했습니다 .
“ 여보 , 우리 미얀마 , “ 오늘은 ” 못간대 ”
“ 엥 ???”
다시 공항버스를 타고 , 쿠알라룸프 시내로 들어가 아무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밤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 미얀마 대사관에 가서 비자신청을 했습니다 .
급행은 사흘 걸리고 , 일반은 일주일이 걸린다네요 .
그런데 주말이 끼어있어서 급행을 신청해도 5 일을 기다려야 하니
비자 나오는 동안 말라카로 가서 좀 한숨 돌리고 오는게 어떻겠냐고 .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
공항에서 빠꾸 ! 맞은 그날 그시간부터 , 단한번도 남편은 나에게 비난을 하지 않았지만
모든 일정을 짜고 , 준비와 수속을 하는 모든 것을 제가 준비했기 때문에
나는 가족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
미얀마비자가 그지경이 된 것은 , 네이버 지식인을 믿었던 제탓이었죠 .
크로스체크를 했어야 했는데 .. 몇백번이나 후회하고 후회하고 또 후회를 했는지 모릅니다 .
가난한 배낭여행 가족에게 도시는 너무 힘들고 숨막히는 곳이거든요 .
건물안은 너무 에어컨을 세게 틀어서 긴팔옷을 꼭꼭 챙겨입어야 하고
건물밖으로 나오면 , 지열과 자동차매연과 건물들이 뿜어내는 에어컨열기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걷기에 너무 힘들었어요 .
다녀보니 아이들이 탈이난 것은 꼭 도시에서였지요 .
서울에 구경온 시골쥐들처럼 , 저희는 문명이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
둘째아이는 두돌이 되지 않았고 , 아토피에 , 우유와 계란알러지가 있습니다 .
아토피가 있으니 인스턴트음식 , 화학조미료가 들어간 것은 피해야 하고
우유도 못먹고 계란도 못먹고 ,
우유와 계란이 들어간 빵도 , 과자도 , 요구르트도 , 치즈도 못먹습니다 .
그러면 얘는 뭘먹느냐 ... 엄마 젖과 쌀밥과 야채와 과일을 먹었지요 .
배낭엔 삶은 감자와 옥수수 .. 바나나와 열대과일들을 항상 비상식량으로 짊어지고 다녔어요 .
그래서 아이들이 지내기에는 오히려 시골이 , 백배는 편하고 좋았습니다 .
[말라카에서 먹은 납작국수]
[튀긴두부 먹는 둘째]
[미얀마 대사관에서 먹었던 눈물젖은 밥]
하여튼 …. 그렇게 말라카에서 닷새를 보내고
다시 쿠알라룸프로 와서 비자를 찾아 , 공항으로 가서 벌금을 내고 항공권을 받아
미얀마로 날아갔습니다 .
두번의 연착끝에 양곤 공항에 도착했어요 .
항상 , 낯선곳에서 첫날은 초긴장상태가 됩니다 .
론리에서 체크해둔 몇군데 게스트하우스를 과감히 제끼고
남편을 위해 ,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호텔로 예약을 했어요 .
남편은 여행자체를 별로 안좋아하는 사람이에요 .
평소에도 밥은 먹던곳에서만 먹고 , 먹던것만 먹는 ..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죠 .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보다는 하던 일을 더 잘하는 사람 .
순발력보다는 지구력이 좋은 사람 .
그래서 편안하고 따뜻한 사람 …….. 이렇게 생각하는데 8 년이 걸렸네요 .
나는 이렇게 이리뛰고 저리뛰고 바쁜데 , 넌 뭐하고 있니 . 가만히 앉아 시키는대로만 하는 .
이 무임승차자야 !!! 라고 비난하고 싶은적도 많았지만 ,
어쩌겠어요 . 그것이 남편의 기질이고 , 품성인 것을 .
여행다니면서도 , 남편은 대학입시이후 , 영어를 할 필요가 없는 인생을 살아왔으니
당연히 그 기능이 퇴화되었고 ,,
저라고 뭐 별반 다를건 없으나 그래도 둘중에 내가 조금 나으니
모든 의사소통 할때는 제가 움직여야 했답니다 . 아니지 . 좀더 엄밀히 말하자면 ,,
성질급한 사람이 움직이게 되어있더라구요 .
숙소를 예약할때도 , 남편은 말이 좀 통하는 한국인이 하는 숙소를 원했지만
일반 숙소보다 비쌌거든요 .
하지만 , 비자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
몇 달만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에 예약을 하고 픽업신청까지 해두었습니다 .
공항에 내려 택시를 잡아타고 가면 되지만 ,
밤늦게 도착해서 짐을 캐리어에 싣고 잠든아이 둘을 하나씩 업고
기사와 택시비 실갱이를 할때면 , 정말 피곤이 세배는 가중되는 것 같았어요 .
그래서 도착한 곳이 ...
미얀마 , 양곤의 “ 레인보우호텔 ” 입니다 .
-미얀마 이야기는 다음에 올릴께요.^^ 들어주실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