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스마트 쿠킹이란

| 조회수 : 15,617 | 추천수 : 1
작성일 : 2002-10-01 21:16:39
이 글은요, 제가 어쩌다 요리책을 쓰게 됐는지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건데 원고가 넘쳐서 책에는 빠진 거에요.
디지탈조선의 food에서 절 만난 적있는 분들은 한번 본글이니까 건너 뛰셔도 되요.


스마트 쿠킹 얘기를 하자면 제 친정어머니 얘기를 먼저 하지 않을 수 없답니다.
평생 가정이라는 온실에서 자식과 손자들, 그리고 화초들이나 키우면서 살아 온 우리 친정어머니는 삼종지도를 따르는 전통봉건사회의 유교적 사상을 가진 여성도, 저처럼 사회의 매운 물을 마셔 본 현대여성도 아닌, 해방 후 여고(당시는 고녀라고 불렀다죠?)를 나오고 외할아버지의 반대로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좀 어정쩡한 시대를 보내고 70 고개를 넘긴 평범한 어머니입니다.
여느 어머니들처럼 가족 돌보는 일이 ‘평생의 숙원사업이자 자아실현’인양 힘드는 줄도 모르고 가정을 일궈 오셨죠.

저희 어머니는 의식주 중 특히 요리에 재능이 있었어요. 꽃 모양으로 자른 당근으로 멋을 부린다거나 접시 바닥을 푸른 채소로 예쁘게 단장하는 일은 '먹는 걸 가지고 장난 치는, 아주 사치스런 일'로 여겼기에 푸드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점수는 거의 낙제점이었지만, 대신 제철의 값싼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해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먹이는 능력만큼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특별했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였나요, 요리계의 원조격인 김재옥 선생님의 요리학원에 가서 요리를 배우시기도 했고 연탄불에 올려놓는 양철오븐을 마련해서 식빵과 카스텔라를 구워 주시기도 했죠.
그때 어머니가 모아놓았던 레시피 공책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엄마 몰래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계량스푼과 계량컵을 꺼내 가지고 놀곤 했어요.
TV의 요리프로에서나 여성잡지에서 본 걸 응용하여 당신만의 요리로 발전시킨 어머니의 특별요리는 우리 집 잔치상에서 맛보고 감탄하던 이모네나 외삼촌댁, 사촌언니네 집으로 전수되기도 했구요.

그런데 어머니는 맛뿐 아니라 음식을 재빨리 하는 것으로도 집안에서 유명했습니다.
아무리 외출에서 늦게 돌아오셔도 30분이면 새로 한 밥과 국, 그리고 새 반찬으로 그득하게 저녁상을 차려내셨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어머니를 두고 늘 “너희 엄마는 참 대단하다”라고 감탄하시곤 했습니다. 두 분이 같이 외출에서 돌아오셔도 아버지가 옷을 벗으시고 발을 씻고 나와 신문 몇 줄, TV 잠깐 보고 있는 사이 어느새 밥은 뜸이 들어가고 맛난 음식냄새가 부엌 밖으로 솔솔 새나오니 어째 그러지 않으셨겠어요?
그런 엄마는 결혼 전 집안일을 전혀 할 줄 모르고, 집안일 할 줄 모르는 게 무슨 자랑이나 된다고 아예 배울 생각도 하지 않는 제게 “니가 이담에 시집가서 엄마 욕을 얼마나 먹이려고 그러니…” 하시며 혀를 끌끌 차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참 다행이죠, 저도 엄마를 닮은 탓인가요, 제 입으로 음식을 맛있게 한다고 자랑할 수는 없지만 밥은 참 빨리 하거든요.
직장 생활할 때(지난 2000년 7월31일 단 1개월도 에누리가 없는 만 22년 간의 직장생활을 접었답니다) 퇴근해 돌아와서 그때부터 국과 밥, 반찬을 새로 장만해서 저녁상을 차리는 저를 두고 우리 집 kimys(제 남편이랍니다)도 “진짜 밥은 빨리 해!!”를 연발했답니다.
맛은 없지만 속도는 칭찬할 만 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맛과 질 그리고 소요된 시간이 모두 만족스럽다는 뜻인지 그 속내는 알 수는 없지만….
여하튼 가족들을 만족시키는 식사를 빨리 준비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요? 저나 우리 어머니가 특별한 재능을 지닌 걸까요? 아뇨, 그건 아닌 거 같고요.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집안 살림에 대한 약간의 관심만 있으면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지난 2001년 2월부터 디지틀 조선의 푸드 사이트에 <김혜경의 스마트 쿠킹>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게 된 것은 저만의 노하우를 소개한다기보다 제가 우리 어머니에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얘기를 정리해서 제 잔소리는 단 한마디도 들으려 하지 않는 제 딸에게 남겨주려는 욕심이 앞섰기 때문이죠.
00학번인 제 딸은 시집 안 간다고 큰소리 칩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고달픈 세상, 웬 남자랑 한 집에 살면서 빨래 해주고 밥 해주고 그러면서 살기 싫대요. 너무 힘들 것 같다나요. 그러니까 요리 같은 것에는 관심 둘 필요없다는 거죠.

물론 저 역시 결혼이란 ‘필수사양’이 아니라 ‘선택사양’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만약 정말 좋은 사람 생겨서 시집가게 되면 어떡할래?” 하고 물었더니 하루는 레또 소고기짜장, 다음날은 레또 소고기카레, 또 그 다음날은 햄버거를 먹이면 된대요, 자기 신랑에게요. 밥은 햇반으로 해결하고요.
저 정말 사돈에게 욕 엄청 먹을 것 같죠? 제 망신은 제 딸이 다 시킬 것 같죠?

그렇지만 전 걱정하지 않아요. 20여 년 전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나올 뿐이죠. 결혼 전, 카레라이스 이외에는 해본 요리가 없는 사람이 바로 저였거든요. 그 카레라이스도 배우려고 배운 것이 아니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면서 저절로 알게 된 거죠. 지금처럼 레또 카레가 있었으면 그나마 카레라이스도 만들지 못하면서 제 딸과 똑같은 소리를 해서 우리 엄마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을 거예요.
제 딸에게, 또 제 딸과 같은 생각을 지닌 여러분들에게 부엌이 두렵지 않게 하기 위해 감히 책을 쓰게 됐답니다. 제 딸 시집 갈 때 이 책 한 권만 가지고 가면 잘 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전 친정어머니가 말로 했던 걸 일일이 기억해내면서 요리를 했는데 우리 딸은 텍스트가 있으니 훨씬 편하겠죠? 또 제 말대로 혼자 살게 되더라도 식생활 해결은 문제 없을테고요.

이쯤해서 왜 제 칼럼의 제목이 <스마트 쿠킹>이었는지를 설명해 드릴게요. 저는 감히 제 요리 스타일을 ‘스마트 쿠킹’이라고 정의내렸답니다. ‘어떻게 하면 빠르고 간단하게 요리를 할까? 동시에 영양도 풍부하고 맛도 좋아야 할텐데…’ 하는 고민을 이고 살아 온 저의 수십 년의 요리 노하우를 이만큼 똑똑하게 설명할 수 있는 용어는 없는 것 같아요. 스마트 쿠킹은 ‘심플 쿠킹’이기도 하고, ‘스피디 쿠킹’이기도 합니다.
친정어머니는 “머리를 써라, 살림을 하는데도 머리를 써야 한단다” “머리 좋은 여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결혼 전엔 그저 엄마들의 수많은 잔소리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귓등으로 흘려 들었는데 정말 그 말이 꼭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컬럼을 연재하기 시작하니까 한 전문직 여성이 제게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자기는 요리를 할 때 머리를 써야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제 글을 보니 '아 그렇구나' 싶더래요. 전 이런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전 어머니가 했던 말을 하나하나 기억해 내면서 경험을 통해 스마트 쿠킹 이라는 노하우를 갖게 됐지만 요즘같이 바쁜 세상, 맞벌이 주부나 독신남녀가 제가 했던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필요가 없겠죠.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배영이
    '04.5.29 7:24 PM

    살림을 하는데 머리를 써야한다는 걸..머리 좋은 여자는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는.. 그거 우리 시어머니한테 자주 듣는 말인데요..ㅋㅋㅋ

    음식이라곤 할줄고.. 게다가 먹어본 음식도 얼마 안되었던 제가 그나마
    먹고 사는건 시어머니의 교육 덕도 있지만 82cook 도움이 제 능력을
    업하는데 지대한 공이 있네요..

    회사 여자 동료들이 어떻게 집에가서 이렇게 밥해먹고
    다니냐고 물어보면.. 선생님이 하신말씀과 같네요..
    남편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림을 하고,
    자꾸 메뉴를 생각하고....요리 방법을 생각해 두고..
    집에가면 생각해둔 순서대로 몸을 움직인 다는 겁니다...

  • 2. 배영이
    '04.5.29 7:25 PM

    참 !!!제가 일등입니당...

  • 3. 김혜경
    '04.5.29 10:48 PM

    하하...배영이님, 앞쪽에 보면 일등 하실 자리 무쟈게 많아요...축 1등!!

    그리구 위에 하신 말씀 맞아요, 애정이 있으면 움직여주죠, 몸과 머리가...그쵸??

  • 4. 세바뤼
    '04.6.11 8:53 AM

    에거거~~
    저는 보고 배운것도 없으니..큰일이예용...
    저희엄마가 살림이랑 안친하셔서...
    오죽하면 제 동생이 엄마보고 살림을 포기했다고 하겠어요...
    일밥,칭쉬에서도 마니 배웠지만 여기 자주 와서 마니 배워야겠어요^^*

  • 5. 김혜경
    '04.6.11 3:24 PM

    세바뤼님...어차피해야하는 거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게 중요하더라구요...저도 살림 잘하고,좋아하는 여자는 아니지만, 즐겁게 하려구요..

  • 6. 토마토
    '04.6.11 4:33 PM

    같은 일을 하는 내 친구 몇몇, 정말 모든 것을 잘 합니다. 할려고 마음만 먹으면, 훨씬 규모있게, 스마트하게 하죠. 요리도 관심만 있으면, 잘~~할 수 있어요.

    저도 정해진 시간에 가사노동을 하려면, 다른 분보다 쿨~~하게 할 자신 있어요.

  • 7. 재은맘
    '04.6.23 1:09 PM

    저도 빨리 하는건 자신있답니다...
    요즘 아침에 일어나서 국하나 끓이고 반찬 하나 후다닥(30분내) 거기다 머리감고, 화장까정..ㅋㅋ
    맛도 뭐...먹을 만 하구요..헤헤...

  • 8. 쭈니맘
    '04.7.12 12:13 AM

    갑자기 제가 82쿡에 들어온 계기가 생각이 나네요..
    북클럽에서 책을 주문할려고 휘휘 돌아보다가..
    마침 제가 일을 하게되었던 시기라 <일밥>이 눈에 띄더라구요..
    가지고 있는 요리책들도 많고 잡지도 많이 사보기에 굳이 필요할까..?를 한참 망설이다가
    그래..나 이제 일하는데 스피드 쿠킹좀 배워보자..라는 생각에 바로 구입을 했었답니다..
    그날 구입한 책이 도착하고..
    82쿡을 알게되고....
    어디다가 감사를 해야할까요..?
    제가 북클럽 회원이 되게 한 잡지에 감사의 뜻을 전해야할지..
    아님,1달동안 다녔던 일터에 감사의 뜻을 전해야 할지...
    정말 82쿡을 알게된건 제 인생에 있어서 큰 행운이에요..
    그리고 선생님을 만나뵌것두요....
    정말 싸랑하는 우리 82쿡~~
    대를 이어서라도 영원히 함께 하고파요..
    나중에 제가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서도 컴앞에 앉아 82쿡을 할 날이 꼭 오겠죠..??

  • 9. 수풀林
    '04.9.17 12:32 AM

    드디어 오늘 깨달았네요.
    제가 왜 살림을 못하는지, 왜 그토록 느려터진건지....
    답은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었군요.

  • 10. 박하맘
    '04.10.16 6:32 PM

    가족에 대한 애정..
    그말이 정답이네요.....^^

  • 11. 낮도깨비
    '04.10.27 3:43 PM

    저도 순위권 ㅋㅋㅋ

  • 12. 아모로소
    '04.11.29 12:19 PM

    타밈머쉰 놀이 넘 재밌다....

  • 13. 잠비
    '05.2.11 10:30 PM

    리빙노트 읽으러 들어온 것인지, 댓글다는 재미를 붙이는 것인지...
    앞으로 가면 1등도 할 수 있다니 부지런히 갑니다.

  • 14. 두민맘
    '05.6.24 10:10 PM

    결혼 10년째... 남들한텐 주부 9단이라고 큰소리치지만 주부의 길은 아직도 까마득합니다..

  • 15. mom
    '10.4.6 11:12 AM

    요리법에 cm가 나오면 자로 재야 할 것 같아서 정말 자를 재 본적이 있답니다. ㅠ.ㅠ

    요리에 요자도 모르는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것을 보면 참 한심하답니다. ㅠ.ㅠ

    스마트 쿠킹.. 난 정말 머리가 나쁜가봐요.. ㅠ.ㅠ

  • 16. loorien
    '10.12.26 9:43 PM

    하하 그 00학번 따님 올해 시집보내고나서 다시 이 글 보시면 감회가 새로우실 거 같아요~

  • 17. 원추리
    '11.5.24 11:36 AM

    하하하 그 00학번따님 지금도 그맘이실려나 샘님 후기 부탁드려요 ㅋㅋ
    사위께서도 뒷모습이 든든하드만요,,

  • 18. 김혜경
    '12.10.2 8:41 AM

    주말부부인 딸아이, 남편이 올라오는 금요일부터 밥 열심히 합니다.ㅋㅋ..
    된장찌개도 제법 맛있게 끓이고..다 닥치면 하게 되더라구요. ^^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날짜 조회
3347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233 2013/12/22 32,990
3346 나물밥 한그릇 19 2013/12/13 22,604
3345 급하게 차린 저녁 밥상 [홍합찜] 32 2013/12/07 24,903
3344 평범한 집밥, 그런데... 24 2013/12/06 22,279
3343 차 한잔 같이 드세요 18 2013/12/05 14,903
3342 돈까스 카레야? 카레 돈까스야? 10 2013/12/04 10,917
3341 예상하지 못했던 맛의 [콩비지찌개] 41 2013/12/03 14,989
3340 과일 샐러드 한접시 8 2013/12/02 14,101
3339 월동준비중 16 2013/11/28 17,019
3338 조금은 색다른 멸치볶음 17 2013/11/27 16,724
3337 한접시로 끝나는 카레 돈까스 18 2013/11/26 12,478
3336 특별한 양념을 넣은 돼지고추장불고기와 닭모래집 볶음 11 2013/11/24 14,811
3335 유자청과 조개젓 15 2013/11/23 11,836
3334 유자 써는 중! 19 2013/11/22 9,714
3333 그날이 그날인 우리집 밥상 4 2013/11/21 11,218
3332 속쌈 없는 김장날 저녁밥상 20 2013/11/20 13,696
3331 첫눈 온 날 저녁 반찬 11 2013/11/18 16,487
3330 TV에서 본 방법으로 끓인 뭇국 18 2013/11/17 15,744
3329 또 감자탕~ 14 2013/11/16 10,501
3328 군밤,너 때문에 내가 운다 27 2013/11/15 11,567
3327 있는 반찬으로만 차려도 훌륭한 밥상 12 2013/11/14 12,920
3326 디지털시대의 미아(迷兒) 4 2013/11/13 10,956
3325 오늘 저녁 우리집 밥상 8 2013/11/11 16,524
3324 산책 14 2013/11/10 13,362
3323 유자청 대신 모과청 넣은 연근조림 9 2013/11/09 10,823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