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라 집안 곳곳을 치우는데, 지난 가을에 둘리양이 호박농장 견학가서 따오고 그림그려 장식했던 호박이 눈에 띄었어요.
썪었으면 버리려고 했는데 서늘하고 건조한 현관에 두어서 그랬는지 석 달이 지났음에도 멀쩡하더군요.
멀쩡한 식재료를 버리면 죄책감이 들겠고, 또 자기 호박이라며 애지중지하는 아이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라서, 호박을 요리해서 없애기로 했어요.
이렇게 멀쩡한 호박을 버리려고 했다니...
하며 반성했어요.
이걸로 뭘 해먹지?
호박파이?
호박죽?
몇 가지 생각해보다가 며칠 전에 해먹었던 단호박 조림을 "그냥호박" 조림 버전으로 만들기로 했어요.
요즘 도시락을 열심히 챙겨 다니는데 반찬으로 넣기에 좋겠고, 파이나 빵보다는 열량이 적은 음식이 될 것 같아서죠.
단호박 조림을 만들 때와 똑같은 과정으로 껍데기를 칼로 어슷하게 썰어내서 제거하고 한입 크기로 깍둑썰기를 했어요.
들어가는 재료와 조리법은 무척 단순합니다.
물 한 컵에 간장 두 숟갈, 설탕 한 숟갈, 다진 생강 반 숟갈, 다진 파 한 숟갈이 필요한 양념 전부입니다.
파는 다져서 따로 두고, 나머지 양념은 잘 섞어서 준비합니다.
호박 (원래는 단호박)을 냄비에 넣고 양념장을 부어서 바글바글 끓입니다.
네, 정말로 그게 다여요 :-)
양념장 국물이 자작하게 졸아들도록 뚜껑을 열고 가끔씩 뒤섞어주기만 하면 되지요.
대략 10분 정도 졸이면 호박이 다 익고 국물도 알맞게 졸아들어요.
그러면 불을 끄고 다진 파를 뿌려서 섞어줍니다.
그러면 이제 솔이엄마님께 배운 대망의 두부콩나물 요리를 시작해보겠어요 :-)
명왕성 오아시스 마트에는 목요일 오후에 농산물 배송 트럭이 들어오는데, 트럭이 1시쯤에 들어온다치면 저녁 5시만 되어도 콩나물은 다 팔리고 없어요.
그런 귀한 콩나물을 이번 주에는 작정하고 찾아가서 한 봉지 득템해왔어요.
바로 오늘의 이 요리를 하려고 말이죠.
솔이엄마 님의 오리지널 레서피를 제가 가진 재료로 환산 혹은 대체하고, 조리 과정을 시각적으로 배열하여 쬐그만 종이에 쓴 것으로 쇼핑리스트인 동시에 조리법 설명서 되겠슴다
ㅎㅎㅎ
양념장에 넣을 다진 마늘은 부지런하신 회원님들은 미리 갈아놓고 밀봉이나 냉동해서 쓰시겠지요?
덜 부지런하신 분들이나 저같이 살림을 날라리로 하는 회원님들은 이런 방법도 한 번 시도해 보셔요.
간식 비닐 봉지에 마늘을 넣고 고기망치로 두드려 10초만에 다진 마늘입니다.
설거지를 획기적으로 건너뛸 수 있어서 당신의 손을 부드럽게 유지하는 효과가 50점, 시간을 절약하면서도 싱싱한 마늘의 풍미를 즐길 수 있어서 50점, 날라리의 쾌감을 누리는 효과가 100점, 비닐봉지 쓰레기 생산으로 느끼는 양심의 가책이 마이너스 200점...
산수 계산은 각자의 몫...
ㅎㅎㅎ
양념장을 미리 만들어 두고요...
넙적한 냄비에 양파를 카펫처럼 쫘~악 깔아줍니다.
양파 위에 두부 얹고...
두부 위에 양념장 끼얹고...
그 위에 콩나물 얹고...
그 위에 나머지 양념장 모두 얹기...
그리고 바글바글 끓이면 완 to the 성!
그릇에 담을 때는 반대 순서로 콩나물이 가장 아래에 깔리고, 그 위에 두부와 양파가 올라가게 되더군요.
저희 가족은 매운 음식을 잘 못먹어서 고춧가루를 적게 넣었더니 색이 좀 덜 곱군요.
단호박 대신에 그냥 호박을 조렸더니, 많이 부드러운 대신에 그만큼 쉽게 짓눌려서 모양은 좀 덜 예뻤어요.
자, 이렇게 해서 오늘의 요리 두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감기 기운이 있는 남편은 입맛이 없다고 저녁을 안먹겠다는군요.
아들아이는 라면을 끓여달랍니다.
뉘에~ 뉘에~
오늘의 요리는 저혼자서 오늘도 먹고 내일도 먹고 모레도 먹고...
날라리 스타일로 만든 거라 억울하지는 않아요.
^__^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