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런저런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얘기 끝에 ‘ 요즘 더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늘 피곤하다 ’ 는 얘기가 나왔다 . 그 자리 있던 20 대 후반 영국 청년이 ‘ 방콕만 해도 낮에는 무지 덥지만 밤에는 괜찮은데 서울은 밤에도 덥다 .’ 며 맞장구를 치더라 . 아 물론 한국말 하는 영국청년이다 . 이 말에 “ 한국 더워 못 살겠다 . 시원한 동남아라도 가야지 편히 자겠다 .” 라고 추임새를 넣자 모두 까르르 웃었던 일이 있다 .
강원도에서 사과농사를 짓는다는 말을 듣고 놀랐던 적이 있는데 , ‘ 과일이 화상을 입는다 .’ 는 뉴스를 듣고 더욱 놀라고 있는 요즘 더위에 …… .
시원한 콩국수로 땀을 식혀보기도 하고
너무 찬 음식만 찾는 것 같아 K 가 왔던 어느 날은 애써 불 앞에 서서
가지찜에 , 된장찌개 , 두부부침 , 고구마줄기볶음 , 호박과 방울토마토 볶음으로 한상 차리기도 했다 .
또 어떤 날은 찬밥을 볶아 채 썬 오이를 올려 먹기도 했다 . ‘ 오이향이 좋네 !’ 라는 H 씨 칭찬을 듣기도 했던 음식 .
삶은 감자와 계란을 으깨고 마요네즈와 섞어 감자샐러드를 만들어 계피가루 , 찻숟가락으로 하나 얹어 한 끼를 때우며 ‘ 이 더위에 난 이걸 왜 만들었을까 ?’ 잠시 헛웃음도 짓게 했던 더위가 이제는 가려나 보다 .
아직 여전히 덥지만 그래도 오늘 아침은 씻을 때 , 물이 그래도 차게 느껴졌다 . 하도 미지근하기에 수도꼭지 위치를 다시 보곤 했었는데 아침엔 ‘ 찬물이 찬물 ’ 같았다 .
어쨌든 ‘ 이번 주만 버티면 밤에 잠은 자겠구나 .’ 는 희망을 가져 본다 .
“ 이 여름 더위에 다들 무탈하신지요 ?” 더위 가기 전에 이래저래 안부나 물어야겠다 .
#2
안부 겸 더위 식히시라고 좀 시원한 사진 몇 장
저 아닙니다
이 또한 저 아닙니다.
#3
K 에게
막바지 더위가 기승이다 . 이사한 곳은 지낼 만하니 ? 덥다고 너무 찬 것만 찾지 말고 건강 챙기길 바란다 . 아침 기사를 보다보니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 의뢰에 대해 ‘ 정종섭 ’ 이란 국회의원이 ‘ 요건에 맞지 않다 ’ 는 취지의 얘길 한 모양이다 . 헌법학자였다고 하더구나 .
곡학아세 ( 曲學阿世 ) 라는 말이 있다 . 보통 학문을 왜곡해 세상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한다는 정도로 해석한다 . 처음 관련기사를 보았을 때 떠오른 말이다 .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 이 사람은 누구의 환심을 사고 싶어 이런 말을 했을까 ?’ 하는 의문이 들더구나 . 세상 사람들로부터 권력이 나오니 권력자이든 세상사람이든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 중요한 건 왜곡이겠지 .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와 이해관계에 따라 사물과 사건을 이해하려는 면이 있다 . 이런 면에서 보면 애초에 ‘ 왜곡 ’ 이란 말이 굉장히 억울할지도 모른다 . 하지만 사물과 사건의 본질이 있다면 그것을 올곧게 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부인할 수는 없다 . 특히 학문하는 사람이라면 또는 전문가라고 불리는 집단이라면 혹은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는 자라면 시정잡배처럼 자신의 처지와 이해관계에 따라 사물과 사건을 쉽게 봐서는 안 되는 거 아닐까 .
공부 ( 工夫 ), 재밌는 단어다 . 낱낱을 놓고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공부와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 요즘 네가 쓰는 단어들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구나 . 아마 공부의 영향이겠지 . 단순히 지식습득에 따른 변화뿐 아니라 네 주변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는 의미일 거다 . 주변이 협소해지고 공고해지면 질수록 그들만이 쓰는 말이 쉽게 생기고 사고체계가 그들을 중심으로 굳어지고 나아가 집단의 이해관계와 나를 동일시하게 되기 쉽다 . 이건 사건과 사물의 본질에 근접하는 공부와 무관하다 . 공부가 왜곡되는 첫 단추가 아닐까 ? 주변이 협소해지며 공고해진다는 말이 의미하는 걸 잊지 않길 바란다 .
사회관계가 복잡해지고 직업이 다양해지며 소위 분업과 전문이라는 말이 각광 받고 있지만 이 말이 갖고 있는 폐쇄성과 이해상충 문제를 지나쳐 보지 마라 . 직업을 갖는다는 건 어느 집단에 속하고 그 속에서 생계를 해결하고 사회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과정이다 . 지금은 이것도 벅차다고 하는 세태이지만 이따금 네 직업과 네 삶을 돌아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얘기 건네 본다 .
사랑하는 K 야
오늘도 행복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