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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엄마, 냉장고가 아니고

| 조회수 : 16,956 | 추천수 : 5
작성일 : 2018-05-06 23:25:34

"이건 쓰레기통이야

제발 우리 4형제 키운다고 그리 아껴 살아온 건 인정하는데

지금은 아니잖아

내가 1년을 쭉 지켜봤어

저 김치냉장고 한쪽 문 열번도 안 열었어

나는 이래놓고 못살아

참을만큼 나도 참았어"


얼마 전 집 냉장고가 고장났습니다.

냉장고하면 엄마 쑤셔박는 통에 아예 안사든지, 300리터 정도

두 짝 사든지 그러다 김치냉장고를 그냥 쓰자싶어 냉동해 둔 그 쓰레기장을

열어제껴놓고 다 들어냈습니다.


유효기간을 알 수 없는 떡, 곶감, 지난 가을에 넣어둔 대봉 한 상자

먹을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참깨와 들깨가루만 쓸 만하구요.


죄다 던져놓고 버리라고 ( 제손으로 이사할 때 버린 게 1톤 트럭 한 대입니다)

당신 손으로 버려야 앞으로 저러지 않을 것같아 열불 터져 밖으로 나왔습니다.

5시간 후 집에 들어가 냉장고 열어보니 죄다 그 자리에 다 들어가 있었습니다.


엄마는 치매중기 정도 진행 중이지만 기억말고는 다 괜찮은 편입니다.

음식은 제가 하고 설거지는 엄마가 하고 청소는 같이 합니다.

강아지가 넷이라 분주한 편입니다.

다 대소변 가리지만 화장실 청소를 하루 열댓번 합니다.


오늘 낮 엄마님 어버이날 친척 모임 간 사이

50리터 가득 채워 오래된 플라스틱에 있는 건 얼어서 통째로 버리고

감종류는 음식물 쓰레기는 따로 버리는 등

80리터 정도 버렸습니다.


엄마 집에 와 보시곤 암말 않습니다.

당신 손으로는 절대 버릴 수 없었던 겁니다.

반찬도 한 두가지만 드시는 바람에 아예 큰 접시에 반찬 여러가지를 올려 드립니다.

평생 몸에 밴 습관이세요. 맛있는 건 아버지와 자식들 주느라.


저 어렷을 적 밥상 두 개 차려 아버지와 남동생, 딸들과 엄마 따로

엄마는 밥먹다가 몇 번이나 일어나고

그게 평생 엄마였어요.

짠하면서도 고집 피우는 거 보면 열불터지고 고함 지르고

엄마는 울고. 동네에서 못땐 년이라 소문났을 겁니다.



 


저도 오십 대 중반 넘기면서

나의아저씨 젤 큰 형님처럼 반세기 동안 먹고싸고 먹고싸고만 했나싶기도 하고

어른이 되는 과정이 언제였는지 어른이 맞는 건지 그 지점을 모르겠어요.


봄은 오고가고 있는데 오십 줄에 들어서니

20대엔 뭐했나?

80년대 통과하면서 그게 청춘이였나 싶기도 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왜이리 빈손이냐고 물어보니

"오지 않은 게 아니라 왔는데 너만 몰랐어"

그렇게 알려주네요.

 

2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아줌씨
    '18.5.7 12:36 AM - 삭제된댓글

    애쓰셨어요, 냉장고가 아닌 창고 정리를 말입니다.

    몇 해 전 어버이날 친정 언니와 홈쇼핑에서 락종류 2세트를 사서 냉장고 정리를 한 뒤 뿌듯해 한 것까진 좋았는데 집에 돌아 와 호되게 몸살을 앓았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가 보니 그 많은 락 그릇이 거의 없고 예전 모습 그대로 검정 비닐에 둘둘 싸여 사방팔방 찔려져 있더군요.

    아무 말 않고 이 번엔 명절선물로 유리락을 다시 구입해 정리해 드렸습니다.

    몇 달 뒤 가 보니 그 많던 유리 그릇이 흔적이 없어 물어 봤더니 우물우물 제대로 답을 못하시는데 속이 상하더만요.

    그 많은 그릇이 언니와 제가 아닌 다른 집에 가 있고 싫은 소리했더니 동네 천원짜리 샵에서 사 온 싸구리 플라스틱이 식탁 위에 올려 져 있어 더 이상 관여 안합니다.

    하지만 원글님은 오늘 참 잘하셨습니다.

  • 2. 디자이노이드
    '18.5.7 1:10 AM

    82 명예의 전당
    1번으로 추천합니다

    가슴이 쿵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고고
    '18.5.7 11:09 PM

    아녀라~~
    고맙습니다.

  • 3. 가브리엘라
    '18.5.7 2:11 AM

    내 얘기인듯 울엄마 얘기인듯 언젠가 내딸도 나를 보면서 이러고있음 어쩌지 싶기도하고..
    정말 50년을 훨씬 넘게 살았는데 나는 아직도 어른이 덜된거 같은데 가끔은 이렇게 덜 떨어진 상태로 이번생을 마치는가 싶은 생각에 덜컥 겁도 나는 밤입니다.

  • 고고
    '18.5.7 11:18 PM

    저는 어직도 제가 어른인지 모르겠습니다.
    청년에서 할마시로 바로 넘어가는 그런 기분입니다.

    다음 생은 바라지도 않고 남은 시간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봐야겠어요.
    고마워요

  • 4. 조금느리게
    '18.5.7 11:30 AM

    제 얘기인 것 같네요. 버려야 한다는 것 알면서도 자꾸 모으고, 쌓고 그러는 게...반성합니다^^*

  • 고고
    '18.5.7 11:09 PM

    우리 얘기죠 뭐^^
    사람이 머물면 느는 게 짐이더라구요.
    뭘 반성까지 하십니까, 민망하게^^

  • 5. 플럼스카페
    '18.5.7 12:06 PM

    사진이 없어도 키톡에 꼭 맞네요.
    가슴이 아려요.

  • 고고
    '18.5.7 11:11 PM

    오늘 저녁에 어버이날 연중행사하면서 엄마하고 사는 나에게 뭐라 어쩌고 하는 사람,
    바로 그 집으로 엄마 모셔다 드리겠습니다고 했습니다.^^
    아우 힘들어요오

  • 6. dlfjs
    '18.5.7 8:32 PM

    읽다보니 눈물이 나네요
    저도 50줄에 해놓은거 없어서 허무하고 나이드신 부모님 걱정에 ,,,참
    인생이 뭔지 나이들수록 더 모르겠고 힘들어요

  • 고고
    '18.5.7 11:12 PM

    글쵸
    나도 엄마도 짠해요.^^

  • 7. 낸시킴
    '18.5.7 9:48 PM

    인생을 50줄까지 살아 보니 컴퓨터도 그렇고 냉장고도 그렇고 생각도 그렇고
    오래되고 쓸모 없는 것들을 제때 버리지 못하면 인생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일상이 쓰레기통이 되어 버린다는것을 점점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이번주 일요일에 교회를 갈려고 마음을 먹었다가 .......차라리 일요일 오늘 하루
    냉장고안을 싹다 정리하고 마음을 비우는 하루를 보내자고 맘 먹고
    하루를 경건하게 보냈습니다.

    이런 좋은글 읽으면서 82하는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 고고
    '18.5.7 11:12 PM

    저도 고맙습니다.

  • 8. 마스카로
    '18.5.7 10:07 PM

    코 앞에 닥친 예기치못한 사건에 시체처럼 늘어져있다가 이 글을 보고
    아...우리 엄마...생각이 듭니다.
    점점 엄마앞에서 고집이 늘어가는 저
    점점 딸앞에서 큰소리 못내시는 엄마

    동네에서는 못된년인줄 모르지만
    전 세상에서 제일 못된 딸년입니다.

  • 고고
    '18.5.7 11:14 PM

    ㅎㅎㅎ
    못된 딸년이 저는 낫다고 봅니다.
    나 하나 희생해서 형제 셋 편하고 엄마 편하고~~
    근데 저는 희생 이런 거 안하고 큰소리치고 모실려구요.^^

  • 9. 테디베어
    '18.5.7 10:18 PM

    우리들의 엄마 저희의 미래겠지요 ㅠ

    50인 저도 열심ㅎㅣ 버리는 중입니다.

  • 고고
    '18.5.7 11:14 PM

    저는 저만 버리면 다 버려집니다. ㅎㅎ

  • 10. 제제
    '18.5.8 5:08 AM

    새아가 들인 시어머니인 저...
    님의 글, 무겁게 읽었습니다.
    새아가 머리 흔들기 전에 많이 버려야겠습니다.
    당장 오늘부터!

  • 고고
    '18.5.8 9:51 PM

    새아가, 참 정감있습니다.
    저는 비어진 김치냉장고에 엄마 좋아하는 사과 한 박스 주문했습니다.
    허전한 마음 달래드릴려고^^
    지인이 사과과수원하는데 오늘 만나 한 박스 3만 5천원
    울엄니 한 달은 거뜬하게 드실겁니다.

  • 11. 초록하늘
    '18.5.8 5:25 AM

    저희 아버지도 치매 초기시라 남의 일 같지가 않네요.
    늙고 병든 부모와 함께 산다는거 참 힘든 일이예요.
    누군가 늙고 병든 부모를 책임져야 되지만 내가 하긴 싫죠.

    자녀노릇 부모노릇
    사람노릇 제대로 하며 살기 쉽지 않습니다.

  • 고고
    '18.5.8 9:52 PM

    내가 하든지 아님 돈의 힘을 빌리든지 ㅎ
    그 속에 그래도 엄마에 대한 미운 정 고운 정이 있어
    저는 욕하면서 모십니다.^^

  • 12. 꽃게
    '18.5.8 10:10 AM

    아까워서 버리시지 못하는 울엄마
    온갖 짝 안맞는 플라스틱통 비닐 봉다리....
    하루 내가 다 쓸어왔습니다.
    아깝다고 쓸만하니까 두라고 하시는 말씀 들은척 만척하고~~

    나중에 그러십니다.
    -난 아까워서 못버리는데 네가 버려줘서 속이 시원하다-

    울엄마는 60이쪽저쪽 나이 먹은 딸들
    그리고 70중반대를 향하는 막내이모에게 아직도 반찬을 해주십니다.
    건강하시고 정신도 저 보다 좋은 엄마---이게 젤 고맙습니다...

  • 고고
    '18.5.8 9:53 PM

    맞아요, 절대 당신 스스로는 못 버리세요.
    심지어 하늘에 벌받는다고까지^^

    건강하셔서 부럽습니다.

  • 13. 소년공원
    '18.5.10 3:29 AM

    저도 요즘 버리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학교 연구실을 새로 페인트칠하고 카펫트도 새로 깔아준다며 방을 다 비우라더군요.
    선배 교수님한테서 물려받은 오래된 책과 서류와 오만가지 잡동사니...
    지난 10년간 한 번도 꺼내서 사용하지 않았으니 앞으로 10년 동안에도 필요없겠지 하며 많이 버렸어요.

    어머님 증세가 아주 천천히 진행되시길 빕니다.
    (회복하셔서 원래의 건강하신 모습으로 돌아가길 비는 것은 너무 욕심부리는 일일 것 같아서요...)

  • 고고
    '18.5.10 9:46 AM

    예, 고맙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야 있겠습니까, 천천히 자연스레 와주면 감사하지요.

  • 14. 상큼마미
    '18.5.10 1:37 PM

    공감합니다~~~^^
    제가 요즘 읽는책이 모두다 정리정돈에 관한책입니다
    소확행이니 욜로니 모두다 내가 나를 대접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소신으로 집정리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해보니 모든물건이 사연이 있어서 선뜻 버리지를 못하겠더라고요~~(무조건 버려야한다!!!)
    특히 친정부모님과 연관된 모든것은~~~
    결론은 이사가기전에는 실패하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몰려옵니다
    머리로는 버리라고하는데 행동은 자꾸 한번다시보기 박스에 들어가니 어찌하여야 하는지요~~~
    어머님께서 빨리 쾌차하시길 빌어봅니다~~~

  • 고고
    '18.5.10 11:18 PM

    오늘도 버리는 문제로 한바탕 했습니다.
    살림을 저한데 맡겼는데도 당신 고집은 여전합니다.
    저는 버리는 선수이고, 엄마는 짱박는 선수입니다.^^
    이러니 날마다 전쟁이지요.
    저도 못 버리는 것들이 있어요. 5년도 한번 볼똥말똥하는 사진과 자료들
    책은 일찌기 아름다운가게에 한 트럭 보내고 나니 시원섭섭하면서 또 책을 사요.
    오늘도 헌책방 가서 2권 사고
    버리고 또 갖고 또 버리고
    그 순환 속에 있는 게 저는 편해요.^^

  • 15. Harmony
    '18.5.13 9:04 AM

    지금 저도 정리하러 컴앞을 떠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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