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봄
봄 타는 걸까 ? 오락가락하는 기온처럼 , 몸과 기분이 널을 뛴다 .
잠자는 시간과 무관하게 늘 졸린 듯 , 또 졸리지 않은 듯하고
기운도 없고 기분도 종종 꿀꿀하다 .
텃밭 정리도 할 겸 , 냉이를 캐러갔다 .
냉이 캔 날 , 냉이튀김과 고구마튀김으로 저녁을 때웠다 .
고구마는 배불렀고 냉이는 봄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
#2 치워야 하는 것들
이따금 냉장고 속에서 불쑥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
언제부터 있었는지 기억도 없는 , 먹고 남은 식재료들 .
한줌의 표고버섯과 물미역과 당근 반 토막이 보였던 날
물미역을 여러 번 씻고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새콤 달달하게 고추장에 무쳤다 .
표고는 끓는 물에 데쳐 식힌 다음에 물기 꼭 짜냈다 .
당근과 양파를 썰어 접시에 담아 놓고 보니 나름 색감이 난다 . 급히 부추도 잘라 얹었다 .
작년 깻잎이 지천일 때 담았던 장아찌와 밑반찬 꺼내 시금치국으로 한 끼 .
#3 게으름과 봄 사이
“ 이거 어떻게 한 거야 ? 도시락으로 괜찮겠는데 . 해줘요 !” 라는 H 씨 말에 ,
“ 뭘 어떻게 해 보이는 대로 한 거지 , 도시락은 토마토 물이 너무 많이 나와 별로일거 같은데 ”
“ 도시락은 스스로 싸가세요 . 토마토 썰고 올리브유에 무친 다음에 으깬 땅콩과 후추 소금 설탕 넣고 버무리면 되옵니다 . 땅콩 대신 호두나 잣 같은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 . 고소한 맛 나는 건 다 어울릴 듯 해 ” 라는 대화를 나눈 토마토 샐러드 .
어젯밤 “ 내일 토마토 샐러드 해주지 !” 라는 H 씨의 요청을 모른척하고 아침에 뒹굴 거렸다 .
마음속으로 ‘ 요즘 몸이 무거워서 어쩔 수 없어 , 봄이라서 그래 !’ 봄 타는 거라 변명하며 .
#4 지난겨울
무밥이다 . 그런데 밥을 태웠다 . 살짝 올라오는 탄내는 양념간장으로도 누를 수 없었다 .
시래기 밥 . 겨우내 볶아먹고 지져먹고 밥 지을 때 넣어 먹고 참 유용했던 식재료 .
정성껏 새알을 빚고 끓였던 팥죽
K 생일 . 별 탈 없이 자라주어 고맙고 자연스럽게 품을 떠나 독립하려는 게 기특하다 .
그래서 종종 부모님 생각을 더 나게 하는 녀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