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이 강남대로 변 건물>
질기게도 오래 산다 싶던 백선엽이 죽고 나니 그가 유산으로 남긴 강남 빌딩이 회자되는 모양인데, 우연찮게도 2000년대 초반 그 건물 몇 개층을 몇년간 임대해 본 적이 있다. 그때 참 특이하다고 느낀 몇 가지가 있었는데,
일단 그 건물에 보증금 설정 등기를 하고 등기부 등본을 받았는데 금융권 대출이 '0'이어서 깜짝 놀랬던 기억이 있다. 강남의 적어도 수백억은 넘어 보이는 건물에 대출이 하나도 없다니 주인이 돈이 엄청 많은가 보다 했다. 하지만 그 건물의 주인(백선엽의 아들)은 당시 백화점에 이태리 고급 양복을 납품하는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었고, 겸해서 중남미 어느 나라의 명예대사를 하고 있어서 어지간히 좋은 부모 만나서 유산 상속 받았나 보다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백선엽이 그 건물의 원 주인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지하 기계식 주차장 관리 아저씨들이 입만 열면 '장군님, 장군님' 하는 거를 보고 나서 였다. 장군이 누군가 물어보니 백선엽이라는 거였다. 어쩌다 한번씩 그 건물에도 오는가본데, 관리 아저씨들이 늘 입에 붙은듯이 하는 말이 '우리 장군님은 서울 시내에 자기 땅 아닌데는 주차를 안하셔' 라는 거다. 그래서 '이 양반(?)도 어지간히 해먹은게 많은가 보다'라고 짐작은 했었다. 그리고 나서 백인엽과 백선엽이 관계도 알게 되고 다까기 마사오와의 관계도 알게 돼서 그 놈의 형제 새끼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대충은 알게 된 기억이 있다.
당시에 관리 일 하시던 분들 중에는 장군님(?)에 대해 유독 충성심이 강해 보이는 분도 계셨는데, 아마 군대에서 백선엽 부하로 근무했었지 않나 싶다. 어쨌든 그 아저씨는 평소에도 장군님에 대한 충성이 철철 넘치는 언행을 보였는데, 정작 자신이 정년 퇴임하는 날 아무도 바래주지 않고 내다 보지도 않는 중에 싸갖고 오신 도시락 보따리 들고 그 건물을 떠나는 모습이 무척 쓸쓸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평생 백선엽이 밑에서 일했을텐데 끝이 너무 처량해서 십 수년이 지났는데도 그 장면이 기억난다. 그 분도 아마 지금쯤 80 나이 바라보고 있을텐데, 백선엽이 죽었다고 또 통곡을 하지나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