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도 발음이나 목소리 등이 약간은 느슨해 들리기도 했다. 귀에 박히는 자극적인 발언을 잘 내지도 않았다.
연일 신문지상을 시끄럽게 만들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의 정치인이었다. 그런 이도 성공한 커리어의 정치가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어찌 보면 중요한 사실이기도 했고, 그래서 그의 존재는 특별하고 중요했다.-----
그의 빈 자리가 이리도 큽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곳곳에 일상으로 담겨졌는지 돌아볼수록 놀라울 따름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에게 조언합니다. 큰 거 하나 해, 그래야 정치적으로 딱 각인이 되지.
그런데 그는 소소한 일상의 풍경을 바꾸는 일에 진력합니다.
버스와 전철의 손잡이가 키에 따라 높낮이가 다른 것이나 비오는 날 우산 빗물 털개가 설치되는 것이나
공공자전거 서비스 서울 자전거 따릉이가 대기하고 있는 것이나 모두, 일상을 사랑하는 그의 철학의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어디 그뿐이었습니까?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운동의 거점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적폐정권 하에서 경찰들의 물대포 작업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촛불시민혁명의 현장 광화문, 그곳을 그는 지켜주었습니다.
그는 청년의 때에 살았던 모습을 시장이 된 뒤로도 그대로 실현해나갔습니다.
아니 더욱 구체적이고 정밀하게 밀고 나갔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또한 적지 않습니다. 시민들의 시민의식, 그 권리를 위해
<서울자유시민대학>을 출발시킨 것은 박원순 시장의 모든 업적 가운데 가장 소중한 일입니다.
보이지 않는 정신의 힘을 기르는 긴 안목의 결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김동춘 -----박원순시장을 보내고나서,
며칠동안의 극심한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나는 박원순 같은 사람은 당장 100조원이 있어도 복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시장의 죽음이 남성들의 젠더 감수성 제고와 권력에 의한 성폭력을 근절하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만, 이 사람이 죽음으로써 우리 국가와 사회가 입은 피해, 사회적 약자들이 앞으로 입을 피해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는 역사이기 때문에 역사는 하루아침에 쉽게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권력자가 된 이후의 그에 대해서 나는 잘 모릅니다만, 옛 기억으로는 술도 못마시고, 범생에 법률가 특유의 소심함도 있을 뿐더러, 성적인 농담도 할줄 모르던 그가 성폭력 가해자가 된 사실을 아직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가해와 피해의 논쟁은 이제 멈추고 진실이 드러나기를 기다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