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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반찬을 사 먹는다는 것, 사소한 저항감을 이긴 신세계

조회수 : 4,031
작성일 : 2018-12-19 09:48:09
친정 엄마가 이런쪽으로 강박이 강한 분이셨어요. 아니 지금도.
물론 풍요하지 못한 살림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돈을 쓴다는 게 용납이 안되는 분이셨죠.

세탁기가 있어도 빨래는 내 손으로 직접
식기세척기가 있지만 정말 단 한번도 사용한 적 없음
진공청소기가 뭐임? 청소는 그냥 걸레빨아 하는 거 아님?
외식은 고기나 구워먹는 거고 회나 떠 먹고 그 외엔
삼계탕? 닭몇마리 사와서 내가 하면 되는데 왜?
반찬이 없으면 김치에나 먹지 사먹는게 말이 돼???
김치를 사 먹는다고? 맙소사!!!
탕제원이 있지만 한약도 늘 집에서 달여 주셨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계세요.
뭔가... 더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분명 있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도 절대 안돼!!! 라는 강박이 심하세요.

그런 엄마 아래서 자란 저는 약간 상상력이 제한되는 측면이 있었죠.
이게 엄마에 대한 원망 같은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심리적 저항이 너무 크더란 거죠. 이유식 배달? 헐!!!!! 이었달까....(혹시 기분 상하신분 죄송합니다....)

그 저항감을 이기고 넘어설 때마다 신세계가 펼쳐지더군요.
세상 이리 편한 걸 모르고 살았단 말야? 아무리 엄마가 그리 살림하는 걸 봤다쳐도 나 바보 아님??? 이란 ㅎㅎ

저에겐,
진공청소기가 그랬고(자취때나 결혼 초엔 저도 걸레로만 청소 했어요)
식기세척기가 열어준 신세계는 어마어마했고...
김치는 늘 사서 먹고...

그런데 마지막까지도 그 심리적 저항선을 넘기 힘든게 김치를 제외한 반찬, 먹거리였어요.
음식 솜씨가 있는 편이기도 하고, 음식하는 속도가 빠른 편이기도 해서..
맘먹고 부엌에 서면 나물 서너가진 순식간에 뚝딱 해 치우는 스타일이거든요. 근데 문제는 그 맘먹기가 참 힘들단 거.... ㅋ

처음엔 단골 육개장집의 육개장을 포장해 와 먹는 걸로 시작한 거 같아요. 주말 외식을 가서 먹고는, 따로 또 포장판매하는 걸 사 와서 한 2-3일 잘 먹는.
그러다 아파트 상가에 반찬집이 들어오고 몇팩 사 먹어 봤는데 맛은 괜찮은데 너무 비싸단 느낌이...
그러다 주1회 이웃단지 아파트 장터의 반찬집에서 4팩씩 사기 시작했어요. 종류무관 4팩 만원.

와...... 살림의 신세계는 삶의 신세계도 함께 열더군요.
이 편한 걸 세상에 제가 그 미련하게 안한다고 버팅기고 앉았구나 싶어서... ㅎㅎ
사온 반찬 몇가지에 그날 메인 요리 하나 올리면 식탁이 이리 풍성한 걸 왜 그리 미련을 떨고 살았나 몰라요.

단점은, 좀 쉽게 질린다는 건데.. 동네 몇군데 반찬가게 돌려가며 요것조것 사 먹어 보는 재미 쏠쏠하고... 이건 가성비 너무 떨어진다 싶으면 간단한 건 직접 만들기도 하고요.

세상 이런 신세계가 없네요 정말.
옛날엔 반찬가게는 맞벌이 바쁜 사람들이나 가는 곳인줄 알았어요.
이젠... 식기세척기와 동급의, 삶의 필수 항목같아요. ㅎㅎ
IP : 218.51.xxx.216
1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18.12.19 9:54 AM (121.155.xxx.165) - 삭제된댓글

    식기세척기보다 반찬가게가 백만배는 좋네요 ㅎㅎ

  • 2. 아자
    '18.12.19 10:11 AM (203.130.xxx.29)

    빨래를 아직 손으로 한다는 글에 놀라고 갑니다. 우리 엄마도 흰 옷 애벌은 꼭 손으로 하시지만, 세탁기 자체를 거부하신다니... 아주 힘드실 것 같아요.

  • 3. dd
    '18.12.19 10:14 AM (59.15.xxx.111) - 삭제된댓글

    설거지는 해봤자 금방 할수 있지만
    반찬만드는건 진짜 힘들어요
    일단 매일 뭘 만들어야하는데 한계가 있다는거
    한번씩 반찬가게서 서너팩 사오면 신세계더군요

  • 4. 로봇청소기
    '18.12.19 10:16 AM (221.147.xxx.113)

    로봇물걸레청소기도 써보세요, 신세계의 지평이 더 넓어집니다.

    물론 손으로 하는 것의 50프로도 못하겠지만, 브라바 이모님이 일하시는 동안 나는 다른 일을 하거나 쉴 수 있다는 거, 아주 매력적입니다.

    속도도 느려 빡빡 닦아주지도 못해 구석구석 다했는지 모르니 좀 답답하지만 그래도 자주 부담없이 돌릴 수 있어 좋구요. 적어도 바닥이 서걱대는 느낌은 없어지거든요. 요즘처럼 미세먼지때문에 난리인 시기엔 더욱 필수품인 거 같아요.

  • 5. ㅇㅇ
    '18.12.19 10:26 AM (122.46.xxx.164)

    사먹는 반찬 위생상태 별로고 조미료 많이 사용하고 가격도 만만치 않죠. 맞벌이면 모를까 전업주부가 밥하는 것도 거부하다니 나이든 저는 이해가 안 가네요. 따신 밥에 요것조것 맛깔나게 조리해서 김 모락모락나는 상태로 식탁위에 올리면 행복하지 않나요?

  • 6. 부심
    '18.12.19 10:27 AM (14.43.xxx.113)

    밥부심 왜 안 나오는 가 했네~~

  • 7. 저도
    '18.12.19 10:29 AM (223.62.xxx.245)

    청소기 이모님 모신뒤에 살림이 너무 편합니다. 사실 얘가 좀 느리고 소음이 많아서 아이들은 엄청 싫어해요. 한시간 반 정도 돌고 혼자 충전 좀 하다가 또 중간에 남아있는 영역 청소해야겠다고 또 튀어나와 돌아요.
    그러다가 끝내기도 하고 어느날은 하루종일 한시간씩 청소하고 쉬고 도 청소하고 쉬고 하는데 먼지통 제 유선청소기의 삼분의 일쯤 되려나. 반쯤되려나 하는 크기가 먼지로 꽉 차 있고요.
    조그만 물걸레 달고 다니는것도 엄청 더러워져 있어요.
    애완동물 키우는 집이라 유선 두번 손걸레질 한번 고집하며 살았는데 지금 완전 신세계에요.
    그 뒤로 반찬도 텄어요.
    반찬은 전 제가 아이들이 잘 먹는 밑반찬이랑 국종류만 하고
    메인을 과감하게 삽니다.
    그리고 주말은 세끼 먹어야 해서 제가 메인을 같이 해서 올려요.
    밖에서 파는게 요즘 맛나긴 한데 장조림이나 메추리알이니 진미채니 모두 다 너무 달아서요.
    제가 밑반찬은 좀 덜 달게 만들어내고 약간 자극적이어야 맛있는 메인을 구입합니다.
    정말 살림이 너무 편해졌어요.
    그리고 버리는 식재료도 없어졌구요. 메인에서 제육볶음 정도만 제가 만드는 정도라 요즘은 재미있어요. 사는게.

  • 8. 김장
    '18.12.19 10:54 AM (118.176.xxx.138) - 삭제된댓글

    저도 김장 빼고는 김치 사먹어요.
    도라지무침, 김무침, 달래무침 같은거.
    나물종류는 직접 해먹는데 김치는
    사먹는것이 내가 한것보다 맛있고 싸요

  • 9. ㅋㅋㅋ
    '18.12.19 10:57 AM (14.36.xxx.234)

    ㅇㅇ
    '18.12.19 10:26 AM (122.46.xxx.164)
    사먹는 반찬 위생상태 별로고 조미료 많이 사용하고 가격도 만만치 않죠. 맞벌이면 모를까 전업주부가 밥하는 것도 거부하다니 나이든 저는 이해가 안 가네요. 따신 밥에 요것조것 맛깔나게 조리해서 김 모락모락나는 상태로 식탁위에 올리면 행복하지 않나요?
    =============================================================================
    네, 이런 자부심 갖고 사는분도있어야지요, 좋으시겠어요. 평생 행복하시길,...

  • 10.
    '18.12.19 10:59 AM (218.51.xxx.216)

    ㅇㅇ 님 ㅎㅎㅎㅎㅎㅎㅎㅎ 저희 엄마랑 똑같으세요.
    저는 애 낳고부터 큰애가 10살이 되기 직전까지 주2-3회 파출부를 썼는데요, 시어머님은 외려 쓸만하니 쓰겠지 잘했다, 하시는데 친정엄마는 아직도 오니 언제까지 쓸거니 니가 직접하면 될걸... 난리셨지요. ㅎㅎ 그러거나 말거나 쓸만하니 썼고 지금까지도 가장 잘한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자세한 사연을 이야기 하면 이해 못하는 사람 하나도 없었는데 친정엄만 끝까지 맘에 안들어 하셨죠. 전 그거 강박이라고 봐요. 안타깝죠.

    그랬던 저도 끝까지 놓지 못했던게 밥, 먹거리였어요.

    근데... 요즘 조미료 무해하다 다시 나오는 거 아시죠?( 그래서 사먹기 시작한 건 아닙니다만) 집에서 제가 하는 만큼 깨끗하진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아요. 김치는 그나마 쉽게 사 먹을 수 있었던게 대기업과 해썹인증 덕에 그 턱이 좀 낮았는데 반찬은 소규모 반찬집.. 사실 좀 그 심리적 저항 극복하기 힘들었어요. 저 튀김 기름에 예민한 애 때문에 닭도 집에서, 심지어 어묵도 만들어 먹던 여자예요. ㅋㅋㅋ

    근데... 뭐 식당이라고 그리 깨끗하겠어요? 우리 외식도 얼마나 많이 하는데요. 그냥 일종의 현타... 가 오더라구요. 조미료 때려 부어본들 반찬을 밥 먹듯 많이 먹는 것도 아닌데. 흙 좀 덜 씻으면 어때요. 아프리카에선 진흙쿠키도 구워 먹는 판에 죽기야 하겠어요? 회충약이나 때맞춰 먹으며 살자 생각하니 인생이 이렇게 한갓지고 평화로울수가 없어요.

    외식이나 간식으로 떡볶이 순대 이런건 뭐 그리 깔끔하고 조미료 안넣었을까요. ㅎㅎ

    제가 밥부심 부려본 사람이라... 그게 얼마나 별 거 아닌지 알기에, 그저 웃고 갑니다. 세탁소 유기 용제가 그리 몸에 나쁘다는데, 드라이클리닝은 안맡기시나요? 몸에 나쁜 유해 물질이 많은 세상이니 밥이라도 정갈하게... 가 저의 모토이기도 하였으나.... 그저 웃지요. 세상은 점차 변해갈텐데.... ㅎㅎ

  • 11. ..
    '18.12.19 11:54 AM (220.71.xxx.110) - 삭제된댓글

    저는 반찬가게 반찬 먹어보면 맛없고 손이 안가던데
    잘하는 반찬가게도 본 적이 없구요..
    맨 장아찌류에 시뻘겋고 짜고... 3팩 5천원이라고 해도 한 팩에 동그랑땡 4-5개 들어있어서
    4식구가 하나씩 집어먹으면 없는데 못 먹겠더라구요.

  • 12. 하하하
    '18.12.19 12:07 PM (110.21.xxx.253)

    청소기 이모님, 브라바 이모님 재밌네요. ㅋㅋ

  • 13. dlfjs
    '18.12.19 12:15 PM (125.177.xxx.43)

    사먹는거 이상하게 질리고 맛없어요 ㅠㅠ. 비싸고
    빙빙 돌다 한두개 사거나 집에서 만들게 되요

  • 14. 좋아요
    '18.12.19 12:58 PM (223.39.xxx.136)

    글솜씨 너무 좋으시네요~
    제가 살면서 느끼던 것을 어쩜 이리 찰떡같이 글로 표현하셨는지 감탄~!^^
    무선청소기 식세기 건조기 물걸레청소기 등등 전부 다 남편이 먼저 사자고 해서 샀고 산다고 할 때도 괜히 알뜰한 주부코스프레하면서 그런거 뭐하러 사냐고 타박하는 척도 했지만 ㅋ 막상 사용하니 정말 너무 편하고 좋네요 ㅎㅎ
    저도 기본적인 것만 집에서 하는 편이고 손 많이 가는 음식은 사다먹거나 나가서 먹으니 편해요. 이것도 남편이 먼저 그렇게 분위기를 바꿔나가서 저도 그냥 못이기는척 따라가는데.. 좋아요 ㅎㅎ

  • 15. 내가 느끼기에는
    '18.12.19 2:01 PM (14.34.xxx.91)

    사먹는 음식이 사먹을만한 음식이 업

  • 16. 진짜
    '18.12.19 4:17 PM (180.134.xxx.219) - 삭제된댓글

    글 잘쓰시네요.
    잘읽었어요.
    님 글 읽고 반찬사먹을때 죄책감 조금 덜할거같애요.

  • 17. 길영
    '18.12.19 6:43 PM (218.52.xxx.230)

    전 반찬 사 먹고 싶어도 왜이리 찜찜한지.
    재료 제대로 잘 씻어서 할까?
    중국산 대부분 쓸텐데.
    양념은 다 저가만 쓸거같고.
    맛 낸다고 조미료도 더 많이 쓸거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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