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다 커서 한 명은 서울로 대학, 한 명은 군대.
직장생활 하지만 시간이 엄청 남습니다. 더구나 남편과 대면대면 한데다 요새 엄청 바쁘기도 해서
9월 주말부터 10월 개천절, 한글날, 주말 들이 시간이 엄청 많았어요.
다들 바쁘게들 사는데 정말 궁극의 외로움이 밀려왔고 살기위해 동네 얕은 산을 등산하고 둘레길을 산책하며
이 외로운 가을을 보내던 중..
내가 이렇게 외로운데 시골에 홀로 계시는 80넘은 노인 우리 친정엄마는 얼마나 외로우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정에야 기본적인 왕래야 한다지만 그저 쉬는 날 하루 얼굴 내비치고 오기 바쁜 날들이었죠.
게다가 그 즈음 엄마 핸드폰을 새로 해야 해서 한 일주일 정도 제가 가지고 있는데
세상에나.. 우리 엄마 핸드폰에 전화 한 통 오지 않더라고요. 오빠, 올케, 동생도 다들 자기 살기 바쁘니까요.
내가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끼니 엄마의 외로움 역시 깊이 공감이 가더군요. 더구나 전화라는게,
서로 안부를 묻기 위해 장만하고 있는건데 정작 엄마에게는 이렇게나 무심했구나 싶었어요.
어제는 하루 가서 엄마와 시간 보내고 왔습니다. 서로 외로운 사람들끼리.
감도 따고, 고구마도 캐고, 호박도 썰어 말리고, 감도 썰어 말리고...
언제까지 건강하게 계실지 갑작스럽게 걱정되고, 돌아가셔서 안 계실 상황을 생각하면 눈물이 막 나고..
예전엔 안 그랬어요. 마냥 좋기만 하고 잘해주기만 하던 엄마가 아니기에 잘 한다고는 하지만 내 진심을 다했던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동네에는 효녀 딸이라고 소문은 나 있지만요. 내가 하나를 하면 둘 이상 자랑을
하셨기 때문이겠죠.
다음주에는 모시고 와서 국화축제 구경 갈거에요. 한사코 나 부담된다고 거부하시지만 자꾸 우겼어요.
엄마, 국화축제 날마다 하는 것도 아니고 이 때 아님 안된다고. 내년에는 무릎이 더 아프셔서 더 못볼수도 있다고.
엄마에게도 자꾸 소소한 즐거움을 더 드리고 싶네요. 평생 농사만 짓느라 시골집을 별로 떠나본적 없는
시골 할머니 엄마. .
예전에는 받아온 농산물, 물론 감사히 먹었지만 감당 못해 많이도 버렸어요. 김치도 막 버려버리고.
근데 지금은 여기 82쿡의 수많은 조언대로 이리 저리 갈무리 하고 저장하고 어떻게 해서든 잘 해서 먹고 있답니다.
오늘 햇볕이 이렇게 좋은데 , 오늘은 시간을 이렇게 쓰면서 나의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아침, 호박 된장국을 정성스레 끓이고, 새 밥을 해서 먹고,
쌀 벌레 생기려는 쌀 한통을 햇볕 잘 드는 베란다에 큰 보자기를 찾아 깔고 거기에 잘 말렸습니다.
점심은 또 예전에 엄마가 주신 것 잘 씻어서 김치통에 넣어뒀던 부추 버무리고, 부추 전 한 장 붙여서 먹고,
어제 가져온 감 몇 개 깍아서 말리고, 그러면서 햇빛 쐬던 쌀도 뒤적여 주고, - 근데 쌀을 벌이 이리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벌이 수십마리 와서 먹느라 바쁘니 걔들 좀 쫓아주고 -
오늘이 아들의 음력생일이라 아들은 못 먹지만, 미역국 끓여 찰밥 하려고 팥 불리고 삶고, 찹쌀 불리고, 미역 불리고..이러고 있네요.
예전 바쁠때는 청소도 일이고, 음식하는 것도 일이어서 얼른 해치울 생각과 짜증과 바쁨과
이런거에 허덕였다면
이제는 이 많은 시간, 청소도 외로움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고,
밥을 하거나 하다못해 고추장물 반찬을 하나 만들더라도 시간을 보내고 외로움을 보내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가 왜 그리 김치를 자주 담그셔서 주는지 이해가 됐어요. 지난 9월에 알배추 2개로 김치를 담그다 보니
이게 참 재미지더라고요. 시간도 가고 뭔가를 하는 행위 자체가 참 좋았어어요.
이상, 온전하게 나의 시간을 알뜰하게 쓰고 있는 중년 아짐의 근황입니다.
외롭다고 느끼시는 분들,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 햇볕이 하루 종일 비추는 날,
어디서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고들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