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역사학자 전우용님 페북

긴글이지만 잘읽혀요 조회수 : 1,739
작성일 : 2018-09-15 19:45:08
어제 서울시 시민청에서 열린 ‘도시재생 엑스포’에서 ‘강남북 균형발전’을 주제로 한 토크콘서트에 패널로 참석했습니다. 서울 강북의 ‘집주인’들은 보통 ‘강남북 균형발전’이라는 말에 ‘강북 집값도 강남 수준이 됐으면 좋겠다’나 ‘강북 집값 상승률도 강남 수준이 돼야 한다’는 욕망을 담습니다. 강남 아파트가 한 달 새 2억이 뛰었는데 자기 집값은 2천만 원밖에 안 뛰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1억 8천만 원을 손해 본 듯한 ‘박탈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강북 도시재생’에 대한 관심도 “이 사업을 하면 우리 동네 집값이 얼마나 오를 것이냐?”에 집중됩니다. “우리 동네가 얼마나 살기 좋아지느냐?”가 아니라.

사회자가 강북과 강남의 집값 ‘격차’ 해소 방안에 대해 질문하기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강남 30평형대 아파트 가격이 20억 원에 육박합니다. 시간당 1만 원도 안 되는 최저임금조차 너무 비싸다고 아우성치는 나라에서, 강남 집값을 서울 ‘평균’으로 만들려는 욕망이야말로 젊은이들에 대한 죄이고 ‘집에서 사는 동물’인 인간에 대한 죄입니다.”라고.

2천만 원짜리 가방을 들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20만 원짜리 가방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격차’가 가진 돈의 차이로 인해서만 발생하는 건 아닙니다. 지향하는 ‘삶의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서 발생하기도 합니다. 2천만 원짜리 가방을 든다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고, 그의 삶을 '좋은 삶'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돈이 먼저’인 삶이 있고, ‘사람이 먼저’인 삶도 있습니다.

옆자리의 우석훈 교수가 전국 모든 도시에서 부는 ‘강남 스타일’ 열풍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강북 스타일’을 정립하자는 탁견을 제시했습니다. 서울 강북과 강남 사이에 ‘생활환경의 격차’가 사라져도, 강북 집값이 강남 집값을 따라잡지는 못할 겁니다. 아니, 그래서도 안 됩니다. 집에 ‘돈’을 담으려는 사람과 ‘삶’을 담으려는 사람이 구분된다면, 그들의 거주 공간이 구분되는 것도 부득이한 일입니다. ‘도시재생’의 궁극 목표는, 강북 집값 올리기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인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것이라고 봅니다.

주최 측에서 애초에 발표용 원고를 달라고 해서 썼는데, 토론 형식이 바뀌어서 휴지가 돼 버렸습니다. 원고의 반 토막을 아카이빙 용도로 첨부합니다.

--------------

이웃이 있는 삶, 역사가 쌓이는 동네

인류가 신석기 시대 정착 생활을 시작한 이래, 마을은 가족 다음으로 긴밀한 단위 공동체였다. ‘이웃사촌’이라는 옛말은 이 최소 단위 지역공동체의 성격을 압축해서 드러낸다. 조선왕조의 수도가 된 이래 일제 강점 이전까지 서울의 ‘도시 마을’들은 치안, 방화(防火), 방역(防疫), 방위(防衛), 요역(徭役)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 사이의 정서적 유대감도 깊어졌다.

세계 어디에서나 근대화와 인구 증가는 도시의 정주성(定住性)과 도시 주민간 네트워크의 안정성을 파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서울의 경우 이 파괴적 영향을 증폭시키는 몇 가지 요인이 더 있었다.

첫째는 일제의 한국 강점으로 인해 서울 주민의 20~30%가 일본인으로 바뀌었던 점이다. 일본인들이 서울로 밀려옴에 따라, 많은 한국인이 타의로 서울에서 밀려나갔다. 그들 중에는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 구실을 했던 사람이 많았다. 일제강점기 서울의 일본인과 한국인은 같은 도시 주민이었으나, 결코 공동체로 묶이지 못했다.

둘째는 한국전쟁 이후의 서울이 세계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인구 증가를 겪었다는 점이다. 서울의 어느 동네든 원 거주민보다는 이주민이, 장기 거주자 보다는 단기 거주자가 더 많았다. 동향(同鄕) 출신끼리 일시적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했으나, 주민들의 직업이 불안정했기 때문에 주민 네트워크도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셋째는, 1960-70년대 강남 개발을 계기로 도시 내부에서 주민들의 이동이 폭증했다는 점이다. 1970년대 초까지 서울 강북 지역에는 몇 대째 한 동네에서 사는 가정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강남 개발에 따른 부동산 투기 붐은 안정적 거주 공간이던 집을 투기 대상으로 바꿔 놓았다. 경제적 문화적 자원이 강남에 집중함에 따라 도시 내 지역간 불균형이 본격화했고, 이는 차별적 지가(地價) 상승 구조를 만들었다. 강남은 서울 시민뿐 아니라 한국인 일반에게 ‘욕망의 종착점’이 되었다. 자기 집을 장만하자마자 다른 곳으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 현대 서울 시민의 행동 양식이다. 스스로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이웃에 정을 줄 리는 없다.

‘정착성의 부재’는 현대 서울의 가장 두드러진 문화현상이다. 이는 이웃과 대화하며 정을 나눌 기회를 축소할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성장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한다. 마을 공동체가 부재(不在)하는 상황에서, ‘지역의 이익’은 오직 ‘지가 상승’으로만 치환된다. 지주의 이해관계만 과대 표상되고, 거주민의 이해관계는 묵살된다. 과거의 도시 재개발 사업들이 거주민 사이의 네트워크를 철저히 파괴하고 오직 지주의 이익만을 대변했던 것도, ‘거주민’ 자체가 유동적이었기 때문이다. ‘한 동네’ 주민이라는 동질감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 그 동네에서 오래 살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장기적 지역 발전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치단체의 행정력이 즉흥적이고 단기적인 사업에만 집중되고, 도시에 누적된 역사와 문화가 파괴되는 것도 이 같은 도시 문화 때문이다.

로마, 파리, 런던, 베를린 등의 유럽 수도 중심부에서 포크레인 등의 건설 중장비를 보기란 매우 어렵다. 이들 도시 시민들이 현대 건축 기술을 몰라서 불편을 견디는 것이 아니다. 오래된 가로와 필지, 건축물을 보존하고 주민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것이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지키는 길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도시의 역사가 곧 도시의 정체성이자 경쟁력이며,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행복한 삶의 전제 조건 중 하나이다.

조선시대 한성부와 성저십리(城底十里)였던 서울 강북 지역은 자체로 지난 600여 년간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고고학적 유물이다. 식민 통치와 중첩된 근대 도시화,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재건, 세계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압축성장의 경험이 모두 서울 강북 지역에 흔적을 남겼다. 서울 강북 지역의 가로, 필지, 건물, 공간구조 모두가 서울의 독특한 역사성과 개성을 표현한다.

조금 오래된 물건은 중고품이지만 아주 오래된 물건은 골동품이다. 개발 시대 뒤에 보존의 시대가 뒤따르는 것은 보편적 현상이다. 도시재생은 도시 공간에 축적된 역사 문화 자원과 사회적 네트워크를 보존하는 사업이자 시민운동이다.

도시재생은 역사와 문화가 보존되는 도시, 이웃 관계가 소생하는 도시, 시민운동과 풀뿌리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도시, 고유한 개성과 정체성이 정립되는 도시,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쟁력 있는 도시를 만드는 사업이다. 서울 강북 지역은 풍부한 역사 문화 자원과 이야기거리를 간직한 공간이다. 이 지역은 도시 재생을 통해 ‘삶의 안정성’과 ‘정신적 풍요’를 보장하는 21세기형 도시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IP : 218.236.xxx.162
2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와우
    '18.9.15 7:54 PM (97.70.xxx.230)

    좋은 글이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 2. ..
    '18.9.15 8:04 PM (223.38.xxx.174)

    이사람 지금 현역 교수도 아니라는데요
    무슨 역사학자?
    왜 자꾸 글 가져오나요?

  • 3.
    '18.9.15 8:12 PM (211.108.xxx.228)

    너무 좋네요.
    알바들이 논리를 만드는 이런 분들 글 아주 싫어한다죠.

  • 4. ...
    '18.9.15 8:13 PM (59.21.xxx.209)

    가져 오던 말던 뭔 상관?
    무식한 사람들은 심기불편한 내용인가?

  • 5. 윗댓글
    '18.9.15 8:13 PM (31.201.xxx.133)

    한양대 연구교수라고 되어있네요. 지금 아닌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시간강사한테도 교수 직함은 붙여줘요.
    틀린 말 하나 없는데 왜 시비걸어요? 참 우습네요.

  • 6. 다 떠나서
    '18.9.15 8:14 PM (106.102.xxx.24)

    나참 내 ...강북도 사람 살게는 해줘야 할거 아니예요.
    강남은 지하철역이 한블럭마다 촘촘히 그물망처럼 되어 있어요
    반면 강북 보세요.지하철은 커녕 점점 슬럼화 되어 가고 있어요
    강남개발만 언제까지 계속 할거예요..
    그래서 강북개발 해달라니 욕망 어쩌고 하며 나무라나요

  • 7. 무슨
    '18.9.15 8:18 PM (62.140.xxx.0)

    무슨 강북이 슬럼화.. 진짜 과장도.
    그리고 도시재생 얘기하고 있는데 뭔 뻘댓글을..

  • 8. ㅇㅇ
    '18.9.15 8:19 PM (124.50.xxx.16) - 삭제된댓글

    82 운영자인가요? 왜 가져오라 마라 인지 ㅋ

  • 9. ....
    '18.9.15 8:24 PM (223.62.xxx.144)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을 생각하고 사람이 먼저인 라이프 스타일이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엑스 인근 서울의료원 부지를 매각한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 영구임대 아파트를 세워서 강남의 잘 발달된 인프라를 소외된 계층도 누릴 수 있게 하면 어떨지요? 아니면 잠실운동장도 재정비 한다고 하는데 거기에 최대한 많은 영구 임대아파트를 지어서 이웃과 함께하는 삶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 10.
    '18.9.15 8:26 PM (121.160.xxx.79)

    이명바그네 떨거지들은 댓글에서도 표가 나네.

  • 11. 사월의눈동자
    '18.9.15 8:32 PM (121.172.xxx.117)

    뭐가 이리 길고 복잡하나요??

    패쓰

  • 12. ㄴ듲ㅅ
    '18.9.15 8:36 PM (110.14.xxx.83)

    좋은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13. 이 글이 길면
    '18.9.15 8:41 PM (174.204.xxx.32)

    소설은 어떻게 읽누...

  • 14. ㅇㅇ
    '18.9.15 8:44 PM (115.164.xxx.8)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15. 전우용은 개뿔...
    '18.9.15 8:56 PM (106.102.xxx.24)

    그래서 무슨 재생을 어떻게 할건지 아무 알맹이도 없고
    그 안에 날림으로 재건된 건물에서 열악한 인프라에서 살고 있는
    강북민들의 고통에 대한 고찰은 없다

  • 16. ...
    '18.9.15 9:07 PM (122.36.xxx.170) - 삭제된댓글

    알바에게서 품격을 찾는건
    먼지에서 깨끗함을 찾는거겠지

    개발에 의해 사라지는 서울의 역사가 안타깝네요

  • 17. 저사람
    '18.9.15 9:10 PM (175.193.xxx.197) - 삭제된댓글

    이제 안보고싶다
    입진보 전형

  • 18. 좋은글
    '18.9.15 9:31 PM (222.121.xxx.127)

    잘 봤습니다.

    어휴~댓글보니 알바가 여기저기 다 붙네요.

  • 19. **
    '18.9.15 9:46 PM (115.139.xxx.162) - 삭제된댓글

    팩트 체크해주니 알바라니. 제대로 반박을 하던가

  • 20. .....
    '18.9.15 10:13 PM (211.205.xxx.75) - 삭제된댓글

    입으로만 나불나불
    바닥 다 보았는데~

  • 21. 전우용님 글
    '18.9.15 10:58 PM (121.173.xxx.20)

    좋으니 정독할게요.

  • 22. ㅇㅇ
    '18.9.16 9:06 AM (223.38.xxx.208)

    저도 팔로잉중인데 이거 못봤었네요.
    감사합니다

  • 23. 꽃보다생등심
    '18.9.16 1:48 PM (121.138.xxx.140)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589027 여행 1박2일 가신다면,남해?서산과 태안 어디가 나을까요? 2 질문 17:12:43 89
1589026 기자회견에 입고 나온 옷은 뉴진스 새싱글 민지룩 8 ㄴㄴ 17:12:26 361
1589025 하이브 입장문 떳어요 다 끝났으니 그만들하세요 5 17:09:38 761
1589024 아이가 숙제로 받아온 보고서 용지를 잃어버렸는데 어떡하죠? 2 무순 17:08:14 127
1589023 어깨길이, 일반펌으로 굵은 롯트로 끝만 말면 어떨까요. 일반펌 17:05:54 65
1589022 108배 하시는 분들 절 계수기 사세요. 1 ... 17:05:18 235
1589021 스탠후라이팬 단점 1 ... 17:01:52 262
1589020 하이브, 민희진 기자회견 반박 “노예계약설 사실무근, 1년간 뉴.. 8 17:01:27 837
1589019 주휴수당 좀 계산해주실 수 있나요ㅠ 4 ... 17:00:45 160
1589018 헬스장 가는거 너무 싫어요 ㅜㅜ 5 .. 16:59:31 463
1589017 어버이날 공휴일 지정.. 절대 반대.. 7 .. 16:57:21 729
1589016 공무원인데 오래 다닐 만한 직장 아닌 것 같아요 9 ㅇㅇ 16:54:40 731
1589015 어깨 점액랑염으로 아파보신 분? 1 궁금 16:53:30 127
1589014 학폭으로 3차 행정소송 가보신분 계실까요? 2 111 16:49:49 340
1589013 이 시간에 믹스 한잔 7 16:47:18 531
1589012 치아 하나만 쑥 들어간거 교정 못하나요 3 ... 16:46:44 425
1589011 농협몰과 하나로마트 다른가요? 참나 16:42:34 105
1589010 고등2,3학년 학부모님께 질문해요 (중간고사 관련) 3 ㅁㅁ 16:41:15 353
1589009 어버이, 스승의 날 꽃을 안 사는 이유 7 ..... 16:32:35 1,413
1589008 돌절구 3 방999 16:32:20 244
1589007 대체민희진이 모라고 15 ㅁㅎㅈ 16:30:26 1,168
1589006 배구 시작 했어요 2 배구 16:27:48 385
1589005 윤석열은 대통 하기싫은데 하는건가요?? 17 ㄱㅂ 16:27:17 1,073
1589004 시간 나서 또 쓰는 우리 엄마 이야기 27 154 16:21:01 1,892
1589003 혈압이ᆢ 4 한의원 16:18:31 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