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가 있었어요. 저는 유복한 집에서 누리고 살았는데 이 친구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에
엄마가 도우미 일을 하시면서 오빠하고 남매를 키웠죠. 그 친구는 머리가 좋아서 수학을 아주 잘했어요. 전교권은 아니나
상위권이었던 친구라 저희 집에서 늘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공부를 같이 했어요. 둘 다 입맛이 토종이라서 짜장면을 좋아
했고 토스트에는 꼭 알타리김치를 곁들여 먹는 아이였어요. 그러다가 이과, 문과로 갈리면서 좀 멀어졌고 이 친구도 원래
꿈꾸던 의대에는 원서를 넣어보지 못하고 모여대 생물학과에 진학을 했어요. 그리고는 한두번 만나고 연락이 끊어졌죠.
늘 보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대학에 간 후로는 서로 바쁘기도 하고 그냥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더군요. 아쉬웠어요.
가끔 그 친구 집에 놀러가면 충격적이었던 게 서울 한복판 (달동네 아님) 이었는데도 재래식 화장실이었던 기억이에요.
고등학교 가서는 교복을 입어서 다행이었지만 중학시절에 늘 똑같은 옷을 입어도 멋지고 까무잡잡해도 이뻤던 친구에요.
제가 화장실 가는 게 힘드니까 늘 저희 집에서 같이 공부하고 놀고 그랬던 좋은 추억이 남아있었죠. 그 친구고 저희 집에
오는 걸 좋아했고, 입버릇처럼 의대에 가고 싶다고 했었어요. 저는 저대로 그 친구는 그 아이의 인생을 각자 살았는데
제가 대학 졸업한 후에 알게 된 사실은 대학시험을 다시 봐서 의대에 진학을 했다는 거에요. 중간에 무슨 사정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의대를 가서 지금 유명한 피부 전문 한의사가 되어있더라구요. 강남에 메디컬빌딩도 갖고 있구요.
저도 애 둘 낳고 평범하게 남편은 개룡남이지만 출세해서 밥은 먹고 살아요. 제가 머리가 나쁜 탓이었겠지만 어쩌자고
이렇게 애 낳고 키워줄 사람 없다고 주저앉았는지..ㅠㅠ 그 친구를 너무 보고 싶지만 만날 주제가 안 되는 제 자신이 참
싫더라구요. 그 친구를 깎아내릴 맘은 전혀 없어요. 본인 노력으로 어려운 집안형편에도 성공한 거라서 부럽더라구요.
솔직히 전 제가 이 나이 먹도록 주부로 살 줄 몰랐어요. (책은 계속 내고 있지만 잘 안 팔리고..ㅠㅠ) 어디 가서 작가라고
말을 꺼낼 레벨도 아니니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차라리 그 신문기사를 안 봤으면...인터넷 병원 광고를 보지
말것을...며칠 내내 살고 싶지 않네요. 게을렀던 건 아닌데...유독 사회생활이 어려웠고 아이 유산을 하고 나서 차마
불임이 될까봐 임신을 미룰 수도 없었어요. 양가 부모 아이는 절대 안봐주신다고 했고...서글프고 왜 난 이렇게 못났고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진짜 목을 메고 싶더라구요. 그 친구는 너무 이뻐지고 귀티가 나고 전문직 여성으로
자리잡고 잘 사는데 전 매달 대출 이자 내면서 명절에 제사 걱정하고 사는 인생이 짜증나더군요. 진심으로 그래요.
앞으로 저 제 정신으로 잘 살 수 있을까요? 수면제, 우울증약 10년 넘게 먹다가 간신히 수면제만 끊었어요. ㅠㅠ
친정식구와는 인연을 끊었고 (사연이 깁니다) 남편은 제가 무능한 것을 간간이 약점 잡아서 스트레스를 줍니다.
지병도 한 두 가지도 아닌데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왜 멀쩡한 집안에서 전 출세도 못했는지...ㅠㅠ 저도 좀 늦게
원하는 좋은 대학은 나왔지만 직업적인 성공이 따르지 않으니 답답하네요. 저 좀 위로해주세요. 너무 뼈저리게 슬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