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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아일랜드 더블린 이층버스와 피닉스파크 이야기

챠오 조회수 : 1,346
작성일 : 2017-08-29 07:06:38
안녕하세욥.
더블린에서 열공중인 처자입니다.
82에 이렇게 뭔가 쓰고 있으면
소소한 이야기 좋아해주시는 언니 이모들에게 
쓰담당하는 기분이에요 ㅎㅎㅎㅎ
이모라는 말의 느낌도 좋아요.
전 고모들보다 이모를 더 좋아했기 때문에 ㅎㅎ
근데 일상적으로도 왜 애매한 호칭은 다 "이모"가 되었을까요?
고모는 "왕고모님" 이럴 때만 등장하고.
고모들이 섭섭하실지도요 ㅎㅎ

7월 내내 일몰 오후 9시 50분 
일출 새벽 4시 50분이라서
새벽에 방이 훤해지면 잠이 깼어요.
그리고 나면 건성으로 다시 잠이 드는 기분이었죠.
근데 이제 어느새 일몰 오후 8시 20분에 
일출 아침 6시 20분으로 급격히 바뀌었네요.
제 친구는 이제 아일랜드의 여름이 끝났다면서,
곧 가을이 되면 집 앞 도로변에 늘어선 가로수들 잎사귀가 색이 바래고
곧 떨어지고 해가 급격히 짧아질거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여기서는 오토바이를 보지 못했어요.
이태리에는 오토바이 수가 자동차 수보다 많을거에요.
하루종일 그 많은 차들 사이를 오토바이들이 요리조리 휘젓고 다니고
그 수도 엄청 많으니까
복잡한 시내에서는 오토바이 소리가 사방에서 왱왱거려요.
어떨 때는 말벌떼 같다…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었어요.

더블린 시내 도로에는 자전거 도로 표시가 되어 있어요.
그만큼 자전거들을 꽤나 타고 다녀요.
도로 여기 저기에 선이 그어져 있고 자전거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독일에서 본 자전거 도로처럼 일관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자전거들이 차들과 뒤섞여 달리는데
얘네들이 얌전히 교통질서를 잘 지키지는 않는 것 같아요.
큰 이층버스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자전거들을 보면
심장이 쫄깃거려요.
자전거 헬멧을 쓰고, 꽤 많은 사람들은 야광조끼를 입었어요.
아침에도 낮에도 야광조끼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어요.
왜 한낮에 야광조끼를 입고 다녀? 라고 친구에게 물었더니
비가 오면 알게 돼, 라는 대답이 돌아왔었죠.
과연…
갑자기 하늘이 어둑해지면서 비가 퍼붓는 것처럼 내릴 때 
차 안에 있었는데
비가 그렇게 내리니까 
와이퍼가 아무리 차창의 빗물을 쓸어내도
도로 한켠을 달리는 자전거 타는 사람이 잘 보이질 않았어요.
야광조끼가 한낮에도 필요한 이유는 그거였어요. 
비가 퍼부으면 한낮에도 자전거 식별이 불가능함…

학교 가면서 이층버스 타는 재미에 들렸어요.
버스에 타자마자 부리나케 이층으로 올라가는데
운이 좋으면 맨 앞 좌석을 차지할 수 있어요.
그때부터는 통학길이 아니라 
아침 댓바람부터 놀러가는 기분이에요 ㅋㅋ
버스 이층에 앉아 있으면 약간의 교통체증도 견딜만해요.
시내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아요.
옆으로 다른 이층 버스가 슥 하고 지나가거나
쪼그만 차가 끼어들어서 바로 앞에 바짝 붙어 가거나
버스가 정차하면서 앞의 버스에 바짝 다가서면
거리감이 실감이 안되어서 저도 모르게 발끝에 힘이 들어가고 
심장이 쫀득해져요.
나 이층 버스 앞자리 진짜 좋아! 친구에게 신나서 말했지만
친구는 별로 반응을 해주지 않네요 ㅋㅋ
넌 별걸 다 즐거워하는구나… 이런 표정 내지는
그게 그렇게 재미있다니 다행이다… 이런 표정인 것 같아요.
그러거나 말거나 제게는 당분간 신기한 이층버스니까
꿋꿋하게 앞자리를 차지하러 가는 걸로 ㅋㅋ

저는 매일 학교 가기 전에
오늘의 날씨를 아이폰에서 확인하고
비구름 그림이 떠 있으면 칼같이 작은 우산을 챙기는데
제가 아일랜드 신참이라서 그런거겠죠.
제 친구는 제게
오늘 비가 올 것 같으니 우산을 챙겨, 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기는 그냥 나간다는거 ㅎㅎㅎㅎㅎ
웬만한 부슬비는 대충 맞고 다니는거고
아주 센 소나기가 지나가면 잠시 어디라도 들어가 있는 게 보통이에요.
소나기가 지나갈 때까지 어떤 가게 앞에 바짝 붙어서서
남자가 자기 바람막이를 여자에게 둘러주고
서로 껴안고 있던 커플이 기억나네요.

더블린 서쪽에 피닉스 파크가 있어요.
유럽 통털어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엄청 큰 파크라고 해요.
제 친구가 친구에게 뭘 받아올 게 있어서 
저녁에 차몰고 나가면서 그곳을 일부러 지나갔어요.
오후부터 이슬비가 오락가락했는데
드디어 본격적인 비가 뿌리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파크에 들어섰어요.
파크가… 한켠에 호수가 있고 군데군데 숲이 울창한 대평원이었어요.
“파크”가 이런 거였나?
런던에서 가 본 하이드파크가 인공구조물을 찾기가 힘든 
나무와 넓은 잔디의 어울림이었다는 기억은 나요.
꽤 넓었다는 것도요.
이 파크는 완만한 구릉도 군데군데 있고
높이가 뚝 떨어진 곳에 꽤 크고 고요한 호수도 있어요.
저녁 7시가 넘어서 사람도 거의 없고 
비까지 내리는데
굳이 차에서 내려서 바람막이 위에 우비까지 쓰고 조금 걸어봤어요.
아무도 없는 광활한 평원에 비안개가 조금씩 피어오르고
너무너무 두텁고 짙은 구름이 아주 낮게 깔려 있었어요.
호수를 보고 다시 차에 올라 좀 달렸더니
완전히 탁 트인 아주 넓은 평원에 하얀 철제 십자가가 우뚝 서 있었어요.
그 유명한 요한바오로2세 교황님이 아일랜드를 방문했을 때
이곳에서 아일랜드 각지에서 몰려온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미사를 드렸대요.
그 십자가는 그때를 기념하기 위한 거였어요.
그곳을 지나 한참 더 간 것 같은데 “파크”는 끝이 없고
생뚱맞게 저 쪽에 무슨 동물 무리가 움직이고 있었어요.
파크 안에 야생 사슴무리가…
그때부터 할말을 잃었어요.
집에서 나와 한 15분 정도 달렸더니 이런 대평원 같은 파크가 있고
그 파크 안에 사슴이 줄잡아 백 마리쯤 무리지어 다녀요…
낮은 구름이 비를 뿌리고
사방은 어둑어둑해지고
차를 세웠더니 가뜩이나 지나가는 다른 차도 없고
광활한 평원은 빗속에서 검푸른 색으로 잦아들고
저 멀리 사슴 무리가 검은 그림자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는 광경은
처음 보는 제겐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경이로움 같은 걸 안겨줬어요.
파크 안의 도로를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고 
약 한 시간을 파크에서 보내고 
목적지에 가서 짐을 받아 왔어요.

이곳은 구름의 두께와 밀도가 다른 것 같아요.
회색으로 깔려 내려오는 구름이 약간 무섭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어요.
이태리의 겨울 하늘도 회색일 때가 많았는데
구름이 짓눌러온다는 느낌은 받아보지 못했어요.
집안이 써늘하게 습기로 차 올라오고
제 친구야 아직은 말짱하겠지만
저는 샤워를 하려면 작은 욕실 한구석에 매달린 작은 온풍기를 잠시 돌려야 하고
자기 전에 방에는 약하게 히터를 틀어야 해요.
이태리에서는 겨울에도 난방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도 추운건 웬만큼 견디지만
습기는 참 몸을 떨리게 하네요.

제가 생각해도
저는 이곳을 참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제 친구를 제가 바라보는 것과 똑같은 눈으로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거겠죠.
잘 말린 오리털이불같은 친구가 옆에서 감싸주고 있으니
덩달아 이불 밖 세상도 그렇게 척박하지는 않아보이는 뭐 그런 효과인지도 몰라요 ㅋㅋㅋㅋ
곧 꿈 깨! 이럴지도 ㅋㅋㅋㅋ 그쵸?
이제 차 한 잔 마시고 자야겠어요.
IP : 86.40.xxx.195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나비잠
    '17.8.29 7:19 AM (112.150.xxx.107)

    와~챠오님 반가워요~역시 잘 지내고 계시는군요
    82 들어 올때마다 챠오님 글부터 찾아보는 애독자랍니다^^
    잘말린 오리털 이불 같은 친구랑 잘 지내고 계신다니 마치 친정 언니처럼 안심 되고 맘이 따땃~해지네요
    아일랜드의.매력에 푹 빠진신듯 한데 소식 자주 전해 주시고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래요~^^

  • 2. 감사해요
    '17.8.29 7:57 AM (118.35.xxx.149) - 삭제된댓글

    비긴어게인에서 봤던 그 아일랜드 더블린인가봐요
    예전 인간극장에서 아일랜드 남자와 결혼한 한국인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아일랜드와 한국은 다른나라의 압박을 받고 독립을 위해 항쟁등 국민정서가 비슷하다 그랬던가요
    암튼...
    쓰신 글만 읽어도 아일랜드를 사랑하고 싶어집니다
    제가 사는 곳은 아침인데도 구름이 잔뜩 모여서 공기가 무겁게 움직이고 있는데
    이 글 읽으니 좀 상쾌해집니다
    글 좀 자주^^ 보여주시고 늘 행복하시길...

  • 3.
    '17.8.29 8:00 AM (99.248.xxx.172)

    어학연수 가셨어요?
    아일랜드는 한국인이 많이 안가는 곳인데 그래서 선택하셨어요?
    더블린 정말 예쁜가요? 동아시아인 많나요?

  • 4. 000
    '17.8.29 8:22 AM (59.10.xxx.92)

    이런글 좋아요 ^^
    반가워요

    아일랜드 와 잘말린 오리털이불같은 남자친구 이야기 ...자주 자주 봐요 ^^

  • 5.
    '17.8.29 8:31 AM (103.252.xxx.21)

    챠오님 반가워요 ^^
    10월 중순에 더블린 여행계획 있는데... 날씨 때문에 쉽지않겠어요 ㅜㅜ

  • 6. ㅎㅎㅎ
    '17.8.29 8:40 AM (218.236.xxx.115) - 삭제된댓글

    잘 말린 오리털 이불같은 남친, 표현이 절묘하네요.
    아일랜드는 더블린밖에 못 가봤는데 다음에는 한달살기 같은 거 해보고 싶어요. 아일랜드 지내는 동안 건강하시고 소식 종종 올려 주세요.

  • 7. 레아
    '17.8.29 9:13 AM (112.154.xxx.174)

    아 정말 더블린이라는 곳...꼭 가보고 싶게 만드는 글이네요
    이층버스, 피닉스 파크...
    저는 츤데레 남편과 더블린 거리를 걷고 싶네요~~

  • 8. 이층버스
    '17.8.29 10:41 AM (112.186.xxx.156)

    저도 런던 갔을 때 이층버스의 앞자리 넘 좋더라구요.
    영국도 무슨 공원 이러면 너무 넓어서 시야의 끝까지 내내 공원.. 이런데 많더군요.
    챠오님 열공하세요~

  • 9. 000
    '17.8.29 10:49 AM (59.10.xxx.92)

    아일랜드 꼭 한달살기 해보고싶군요
    자세한 이야기 환영해요

    그 공원이름이 어떻게되나요?

  • 10. 감사합니다
    '17.8.29 12:27 PM (222.237.xxx.13)

    반가워요~^^ 인사먼저하고 읽으러갑니다~

  • 11. 000
    '17.8.29 3:49 PM (59.10.xxx.92)

    오..피닉스파크였네요. ㅎㅎ

  • 12. 저도
    '17.8.29 5:46 PM (58.120.xxx.15)

    이층버스 너무 좋아서 일부러 2층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점까지 간적이 있었어요.
    더블린은 아직 못가봤어요. 꼭 가보고 싶네요.

  • 13. 화신
    '18.7.1 11:46 PM (61.252.xxx.179)

    예전에 챠오님 글 복습중에 작년에 쓰신걸 발견하고 읽고가요~ 잘 지내고 계시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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