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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없이 혼자 떠난 제주도 1박2일-5

pipi 조회수 : 2,537
작성일 : 2015-11-11 23:08:08

정말 너무너무 늦었지만 완결을 향해 달려봅니다.

변명을 해보자면
초여름 그렇게 충동적으로 제주도에 다녀오고 나서도
저는 더욱 더욱 더 디프레스 상태로 가을을 맞았다고만 말씀드립니다.
저의 경우 제주도 여행이 전혀 재충전의 시간은 아니었어요..
그냥 머릿속에 또 하나 낯선 그림 하나 그려진 정도입니다.

_____

다음 날 아침,
일곱 시 쯤 눈을 뜬 것 같아요.
완전 게으르게 움직였어요.
하지만 그래도 대충 차리고 나온 건 여덟 시.
밥 할 필요도 청소할 필요도 없는 코딱지만 한 방에서
차마 아침 티비 프로그램은 못보겠더군요.
짐을 챙겨 나왔습니다.
숙소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었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배차 시간도 꽤나 긴 것 같았고요.
저는 그냥 아침 식사나 하고 공항으로 가서 
다시 집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곳이니까요.
그래도 어젯밤 슬쩍 검색해 본 바,
천제연 폭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주상절리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거든요.
예전에 회사 후배의 제주도 여행담에서
악천후 속에 주상절리를 가서 
제대로 경치를 못 봤다는 말이 기억나기도 했습니다.
버스정류장의 안내판을 아무리 봐도 뭐가뭔지 모르겠다 싶을 때,
천제연 폭포 입구에 택시가 보입니다.
택시를 타고 주상절리로 갑니다.
주상절리까지는 걸어 갈 수 있는 거리라고도 하던데
아침 댓바람 혼자 걷기도 그랬고요.
또 이번 제주 여행의 택시 기사님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좋았어요.

주상절리에 도착하니 아직 입장 시간도 안 된대다가
비가 슬쩍슬쩍 내리고 있었습니다.
가는 비였지만 굵어질 것 같기도 하고...
걱정스러웠지만 저와 비슷하게 도착한 출입구 직원에게 표를 끊고
주상절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검은 현무암 해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주상절리는
전날 보았던 천제연 폭포에 비해 실망스러웠어요.
얼굴에 침 뱉는 것 같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요.
바다도, 검은 돌더미도, 평소 그토록 좋아하는 아침 시간도
다 엇박자를 이루는 순간이었습니다.
주상절리 구간이 무척 짧았던 것도 한 몫했구요.
그런데 다행히 밖으로 이어진 
월드컵 보조경기장 길을 따라 
산책코스가 있었습니다.
길은 무척 훌륭했구요.
다만 그 길은 주상절리 티켓이 없어도 갈 수 있는 그런 길이었는데
음, 비가 오고 있다고 했죠. 
우산없이 그냥 걸었어요.
월드컵경기장(그니까 아주 작은 보조경기장 같은 겁니다)에 다다르니
거기는 아무도 없었고
텅 비고, 막다른 곳이었습니다.
유럽의 작은 마을 축구장 같은 분위기였는데
사람 흔적이 있기를 바랐지만
텅, 텅 비어 있었습니다.
주상절리 비슷한 바다 아랫길이 있길래 내려가 보니
아무도 없는 가운데 해녀들이 잠깐 들리는듯한 표식의
작은 움막 같은 게 눈에 보입니다.
(음... 기억이 가물가물... 
어쨌거나 그날 아침 거기엔 저 밖에 없었으므로....)

월드컵 보조경기장을 빠져나오면서

내가 걸어온 길이 약간 비탈길었다는 걸 알았어요.

제 앞에 펼쳐진 주상절리를 향한 약간의 오르막에

어떤 여인이 혼자 걸어가고 있었답니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에 나오는 여자처럼 뚱뚱한 여자였는데요.

그녀는 우산이 있었어요.

저는 우산이 없었고요.

근데 저는 그녀가 저를 절대 돌아보지 않기를 바라며 걸었어요.

왜냐면... 그냥 무서웠거든요.

비오는 아침의 올레길은 진짜 무섭습니다.

운치있는 길이었지만 이미 뉴스로 접한 기타등등이 있어서요...

50미터 앞의 그녀가 그냥 돌아만 봐도 왠지 무서울 것 같은 그런 아침,

그 비오는 길에는 주먹만한 꽃이 핀 이름 모르는 나무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주상절리 매표소 앞으로 가면 괜찮겠지 하며 열심히 걸었답니다.


제주도는 원래 비가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분다는데요.

저는 충동적으로 갔고, 그게 7월인데

음... 날씨가 서울로 치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제주도로 치면 좋은 날이었나봐요.

주상절리 매표소 앞에서, 여전히 이른 아침인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비는 오고 이제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슬렁슬렁 드는데

텅 비어 있는 주차장만큼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주차 직원인 아저씨가 한 마디 하시더군요.

"어? 비는 오는데 바람은 안 분다."

그니까 그 말이 제주도는 워낙 바람이 심한데

비가 오면 더 심한데 오늘은

비가 와도 온순한 날이다...

이런 말 같았습니다.


- 한 편 더 써야 끝나겠네요. 

뜨문뜨문 쓰느라 뜬금없으실 분도 많으실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_-;;;

- 그냥 저도 오랜만, 혹은 거의 혼자 처음 여행이라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고픈 마음에 쓰는 여행기니까 

대충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IP : 175.213.xxx.170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음...
    '15.11.11 11:13 PM (222.238.xxx.125)

    밑에 지난 번에 올리신 글을 링크해주시면 찾아보기 더 좋을 것 같아요~~

  • 2. 돌멩이
    '15.11.11 11:30 PM (59.15.xxx.122)

    님 그거 아세요?
    글 굉장히 잘쓰세요. 소질있으시구요. 우울함떨쳐내시라고 드리는 말씀은 아니구요. .

    계속 연재부탁드려요
    대리만족이라도 하게요

  • 3. --
    '15.11.12 12:00 AM (58.65.xxx.32) - 삭제된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근데 디프레스 상태.. 우울감이나 우울한 상태라고 하면 글에 멋이 없어질라나요?

  • 4. --
    '15.11.12 12:03 AM (58.65.xxx.32) - 삭제된댓글

    그리고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그 여자가 살인마라도 되는 줄 알겠어요........

  • 5. jeniffer
    '15.11.12 12:27 AM (110.9.xxx.236)

    글을 읽으면서 스치는 생각...
    내가 후기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글 너무 좋아요. 같이 느낄 수 있어요.

  • 6. jeniffer
    '15.11.12 12:28 AM (110.9.xxx.236)

    페르난도 보테로의 여자 주인공! 전 딱 그림이 그려지는대요?

  • 7. 기다렸어요.
    '15.11.12 1:56 AM (39.120.xxx.5)

    오늘 2편이나 올려 주셨네요.
    글이 한 동안 안 올라와서 이젠 안 올려 주시나보다 했었어요.
    얼굴이 침을 뱉는듯한 비, 페르난도 보테로를 닮은 뒷 모습.. 딱 와 닿아요.
    다음 편도 읽으러 갑니다.

  • 8. ........
    '15.11.12 2:01 AM (180.230.xxx.129)

    나이들면서 책읽는 시간이 아까웠었어요. 필력없는 소설가가 의외로 많아서 뭔가 건질까 싶어 끝까지 읽다보면 아까운 시간만 보내고 마니까..한국에 이름있는 작가보다 원글님 글이 좋습니다. 어쩌면 묘사를 저렇게 할 수가 있죠? 원글님 시선을 따라 그대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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