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한민국의 현재는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울리히 벡은 이 책에서 현대 사회의 특성을 '위험사회(rick society)'라는 너무도 적절한 용어로 정의했다. 그가 말하는 위험은 '눈앞의 위험'이라기 보다는 '직접 감지되지 않는 위험'이다. 직접 감지되지 않기에 예측하기 힘들고,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근대성은 세계를 인간의 통제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과정이었지만 파편화, 불확실성, 전통의 일소 등 탈 근대적 특징들을 반영하는 현대는 개인에게 세계에 대한 통제와 예측이 어려운 일로 느껴지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선택적인 전달을 특징으로 하는 매스미디어는 이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을 확대 재생산하여 실질적인 위험으로 느끼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 사회에서 위험 예측과 통제를 맡았던 과학은 이 과정에서 가치를 의심받게 된다. 최근에 녹취록이 증거가 되어 시선을 끌었던 일들과 관련된 과학의 기술적 지원으로 가능한 애너그램처럼 과학마저도 불신의 범주에 들어가도록 하는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미디어의 속성상 이 다양한 의견들이 수렴, 정리되는 것을 기다리기 보다 이들을 즉각 보도함으로써 한 국가 또는 개인의 부정적 이미지만을 전달해 위기감과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감을 증대시킨다는 점이다.
따라서 과학의 진보와 세계화와 같은 급격한 사회변동을 경험하면서 개인은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인식을 하게 되고, 점점 더 스스로를 제약하고 수동적으로 변하여 직관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무기력한 개인에게 자유의 가치는 한없이 추락하고 평등은 자리할 수 없게 되는 것이 당연시 된다. 이는 개인에게 느껴지는 실질적인 위기의식의 증가 문제임과 동시에 과장된 공포문화의 조성이기도 하다. 누가 우리를 왜, 공포로 몰아가는가.
우리 사회에서 보여 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위험사회’를 향해 국가기관이 한 몸이 되어 질주하는 현재를 목격하게 된다. 이석기 국회의원의 구속에 필요한 절차의 무시와 인권 침해, 박원순 시장을 향한 새누리당의 원색적이고 공격적인 발언들로 인한 명예 훼손, 국정원의 개혁을 촉구하며 국정원 사태 규명에 힘을 모으고 있는 국민들은 외면한 채,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조선일보 1면의 사생활 탐구 기사 등 거대 언론들을 통해 전달되는 기사들에서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매몰된 나팔수들을 보는 듯하다.
국민들이 바라는 정의를 향한 힘을 분산시키기 위한 언론의 재구성과 과학 기술이 뒷받침된 조작과 왜곡은 아닌가라는 합리적 의심을 하는 것이 크게 상식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회의 불안감은 집단의 광기를 만들어 내는데 큰 몫을 한다. 공동체의 와해는 신뢰의 붕괴에서 시작된다. 박근혜정부의 출범부터 지금까지를 짚어 보면 아주 오랜 시간을 주도면밀하게 저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허구의 구조물들을 만난다. 구조물이 국가를 위한 것인지 한 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긴 하지만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안정국으로 몰아가는 현재의 정권을 결코 신뢰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을 보이지 않는 정부와 계속되는 언론의 편향적이고 무책임한 보도 행태는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하겠다.
민주주의 사상의 핵심적 이상 두 가지는 바로 ‘자유’와 ‘평등’이다. 얼핏 서로 조화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듯한 이 두 가지 이상을 추구하고 조화시키고자 하는 민주주의 사상은 처음부터 매우 어려운 딜레마를 안고 시작했다 하겠다. 하지만 이 땅의 민주주의 확립을 향해 끊임없이 고군분투한 시간들은 결코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개인들의 존엄이 마구잡이로 훼손되어 인권을 짓밟는 일들을 바라보면서 공인을 떠나 사회 구성원으로서 권리 침해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만나게 된다. 현 정권을 위한 개인의 희생 요구가 마치 국가를 위한 희생처럼 치부되어서도 안 될 일이다.
현대는 이미지 사회이다. 국가의 위상과 개인의 명예는 이미지화(化) 되어 세계에, 사회에 알려지고 있다. 개인이 없는 사회를 상상할 수 없듯이 사회를 떠난 개인도 생각할 수 없다.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개인이 주체가 되어 사회를 이루며 그 사회가 만든 국가는 세계를 이룬다. 한 개인의 인권과 명예가 정권의 권력 놀이에 더 이상 희생당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합법과 불법의 사실 여부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판단될 때까지 개인의 인권과 명예를 지켜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한 개인의 잃어버린 명예 따위에는 무관심한, ‘직접 감지되지 않는 위험’을 방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위험사회에 대한 인식은 현실을 직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개인의 자각에서 출발함을 기억해야 할 때이다